귀천(歸天) (프라하)

하늘 No.19 [연작] 5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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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Pie Jesu  


귀천(歸天)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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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프라하에서 첫 날 어제 600 KM 를 육로로 달려서 이 곳까지 왔다. 나에게 프라하는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모른다. 아침은 언제나 다른 느낌이지만 오늘의 아침은 나에게 자유와 속박으로 다가온다. 살아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이미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대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No. A1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A2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A3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그 곳으로 가는 길 아직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차가운 새벽 공기는 신선함을 준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공원을 들어서서도 한참을 위로 걸어 갔다. 마침내 다다른 곳은 도시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 곳 나는 그 곳에서 시간을 보았다.

No. B1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B2 *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B3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B4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B5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No. B6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과거로 가는 문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잊는다는 것... 또는 잊지 못한다는 것.. 망각에 대한 단어들은 사소한 몇 음절의 차이로도 너무나 큰 의미들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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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 이제 시간이 제법 흐른듯 하다. 새벽의 찬 공기들이 습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두 개의 첨탑... 두 개의 문... 그리고 두 개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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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이 곳에서는 많은 잃어버린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차마 버리지 못하는 시간들도 있다. 잊지 못한다는 것은 잊혀지는 것만큼이나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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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처음으로 온 이 곳.. 하지만 나는 5년전에 이 곳을 보았다. 하지만 이 곳을 지나치고 난 이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의식 하지 못하고 이 곳을 지나쳤건만 나는 이 곳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30장이 넘는 같은 사진들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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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우연찮게 보도블럭에 난 작은 생채기처럼 그저 그런 일일 뿐인지도... 내가 이 세상에 많은 의미를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작은 자유 하나를 얻는 것과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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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여행 일기 프라하에서 첫 날 어제 600 KM 를 육로로 달려서 이 곳까지 왔다. 나에게 프라하는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모른다. 아침은 언제나 다른 느낌이지만 오늘의 아침은 나에게 자유와 속박으로 다가온다. 살아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이미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대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곳으로 가는 길 아직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차가운 새벽 공기는 신선함을 준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공원을 들어서서도 한참을 위로 걸어 갔다. 마침내 다다른 곳은 도시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 곳 나는 그 곳에서 시간을 보았다. 과거로 가는 문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잊는다는 것... 또는 잊지 못한다는 것.. 망각에 대한 단어들은 사소한 몇 음절의 차이로도 너무나 큰 의미들이 변한다. 그리고 문 이제 시간이 제법 흐른듯 하다. 새벽의 찬 공기들이 습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두 개의 첨탑... 두 개의 문... 그리고 두 개의 기억들... 시간 이 곳에서는 많은 잃어버린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차마 버리지 못하는 시간들도 있다. 잊지 못한다는 것은 잊혀지는 것만큼이나 슬픈 일이다. 만남 처음으로 온 이 곳.. 하지만 나는 5년전에 이 곳을 보았다. 하지만 이 곳을 지나치고 난 이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의식 하지 못하고 이 곳을 지나쳤건만 나는 이 곳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30장이 넘는 같은 사진들을 찍었다. 헤어짐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우연찮게 보도블럭에 난 작은 생채기처럼 그저 그런 일일 뿐인지도... 내가 이 세상에 많은 의미를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작은 자유 하나를 얻는 것과 같은 일이다.
Photography : 하늘 Edited, Arranged, Produced : 하늘 2003.03.16 체코, 프라하, 비쉐흐라트 공원 국립묘지 (Czech, Praha, Vysehrad) Contax T3 Carlzeiss T* Sonnar 35mm f/2.8 Leica M6 Leica M Summilux 35mm f/1.4 Canon D60 EF 28-70mm f/2.8 L, EF 100mm f/2.8 Macro Fuji Superia 100, Reala 100, Provia 100f (RDP III) Kodak E100VS SkyMoon.info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조수미] Pie Jesu-Requiem (Gabriel Faure) (Prayers) 귀천(歸天) (프라하) Photo-Image https://youtu.be/Da7WyutxZ9E https://youtu.be/GhcvgVrNLLY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Dona eis requiem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Dona eis requiem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Dona eis Domine Dona eis requiem 저들에게 주소서 주여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Sempeternam requiem Sempeternam requiem Sempeternam requiem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Pie Jesu Pie Jesu Domine Dona eis, dona eis 자비로운 예수 자비로운 주 예수님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Sempeternam requiem Sempeternam requiem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체코, 프라하, 비쉐흐라트 공원 국립묘지 (Czech, Praha, Vysehrad) 비쉐흐라트(Vysehrad)란 높은 곳에 있는 성을 뜻하는 말인데, 실제로 비쉐흐라트는 블타바강 언덕 위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6세기경 체코의 조상이 되었던 서슬라브 민족이 처음 정착 하여 살았다는 지역이다. 또한 체코 민족의 조상 끄록(Krok)의 막내딸 리부쉐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아 도읍으로 정하고 프라하의 번영을 예견했다는 곳으로도 전해진다. 12세기를 거치며 요새화된 비쉐흐라트는 15세기에는 후스전쟁의 여파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요새로 다시 거듭난 곳이다. 스메따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의 1악장에 등장할 정도로 체코인들의 정신적인 뿌리가 되는 비쉐흐라트에는 11세기의 로마네스크양식의 로툰다로 지어진 성 마르틴 성당을 비롯하여 신 고딕양식의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이 있으며,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국립묘지도 있다. 이 묘지에는 화가 미꿀라슈 알레쉬(M. Ales), 알퐁스 무하(A.Mucha), 작가 까렐 차펙( K.Capek), 보제나 넴코바( B.Nemcova), 음악가 드보르작(A.Dvorak), 스메따나(B.Smetana)등 체코의 정치, 문화, 예술을 이끌었던 유명 위인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묻혀있다. 비쉐흐라트 언덕 위 성벽에서 바라다보이는 블따바 강과 시내의 전경이 특히 아름다운 이곳은 산책코스로도 제격이다.

https://skymoon.info/a/PhotoEssay/19  

깊은 강물은 돌을 던져도 흐리지 않는다 [톨스토이]

여행 (로만틱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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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로만틱가도) 그런 곳이 있다. 죽어서 묻히고 싶은 곳.. 한참을 산을 올라서 만난 강 너머의 초원을 보면서 내가 죽으면 저 곳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이 곳에 있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이 곳에 나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리란 걸 안다. 세상 속에 너무 많은 욕심을 남기는 것은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월을 잡으려는 것처럼 부질 없는 일이다. 로렐라이 언덕 라인강을 내려가는 여행중의 하일라이트, 하이네의 시가 너무나 유명하게 만든 로렐라이. 높이 130m의 바위산 밑을 라인강의 물줄기가 굽이치고 있다. 빠른 물살과 심한 커브로 예전에는 배의 조난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그것이 사람을 물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마성의 처녀의 전설을 낳았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로만틱가도 독일의 아버지강으로 불리는 라인 강은 예부터 유럽 교역의 중심 수로로 총길이 1,320 킬로미터의 국제하천이다. 라인강 주변에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로렐라이 바위 등이 유명하며 특히 마인츠에서 코블렌츠 사이의 절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로만틱 가도'이라고 불린다. 배를 타고 라인강의 정취를 느끼면서 유유히 독일의 남북을 가로지르며 나아가 보면 비로소 독일 여행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행 III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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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h Jones] Seven Years 여행 III (모스크바) 러시아에 도착하니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싯구절이 떠올랐다. 왜 삶이 나를 속여도 슬퍼하지 말아야 할까? 지난 추억은 결국 소중해진다는 푸슈킨의 결론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사람은 과거에 사는 걸까? 아니면 미래에 사는 걸까? 현재라는 시간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 붉은 광장 ==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 것은 크라스나야 라는 러시아의 고어에서 유래한다. 원래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크라스나야 라는 말은 지금은 붉은 광장 이라는 말로 의미가 통하고 있지만 본래는 아름다운 광장 이라는 의미였다.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며 15세기경만 해도 흙벽으로 둘러싸인 키타이 고로트라는 지구에 수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어 노점을 벌이던 곳이다. 붉은 광장의 퇴적토는 4M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에 의해 1세기에 1M 비율로 토사가 쌓인다고 한다. 이 사이 붉은 광장을 밟고 지나간 사람은 얼마나 많은런지... 위기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타타르인의 침입을 막으려고 사람들이 달려온 것은 이 곳이 붉은 광장이라 불리기 한 세기 앞의 일이다. 미닌과 보자르스키가 폴란드를 격퇴한 것은 광장에 토사가 쌓이기 시작하던 무렵이고 농민 반란의 주

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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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유난히 매서웠던 이번 겨울에 TV 광고에 마음이 혹해서 무작정 떠난 여름으로의 여행... 영하 2도의 한국을 떠나 섭씨 39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의 캄보디아를 지나 서늘한 가을 날씨의 베트남 하롱베이까지 여름옷도 겨울옷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으로 다녔다. 풍경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눅눅한 한 장의 노란 수건이었다. 그 곁에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몇몇의 옷가지들이 널린 빨랫줄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하롱베이의 겨울은 우리나라처럼 매섭진 않지만 내내 비가 오고 안개가 끼는 습한 기후였다. 한국의 10월 하순쯤 되는 온도에서 이런 습기는 금새 온몸을 식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날씨에 난방도, 전기도 제대로 없는 물 위의 판자집에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의 옷가지가 겨우 이것뿐이라니... 새롭게 페인트 칠한 판자 벽과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하트를 그려둔 이 집은 신혼 살림을 막 시작한 집이었다. 수건 한 장 보송한 것 쓰기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그들의 신혼은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부터 쌓였던 어떤 감정들이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수건 한 장에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느꼈다. ---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뒤돌아 서는 것이었다. 그저 가을날씨로만 느끼는 나는 이들의 겨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만나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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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캄보디아 출사여행을 다니며 느낀 생각이지만 연작에 포함될 내용은 아니어서 캄보디아 연작의 끝으로 붙여 봅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손가락을 하나 치켜드는 것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한참이 지나서 가이드가 이야기 해주기를 "1달러만 주세요" 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의 물가와 인건비를 생각해서 1달러만 주세요 라는 것을 우리나라 말과 시세로 환산하여 번역하면 "3만원만 주세요" 라는 뜻이 된다. 이 나라에서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큰 돈이 생길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관광객이라도 워낙 많은 구걸자를 만나기 때문에 처음 한두번 말고는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관광객 입장에서 구걸이 아니라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도 살만한 것도 없다. 관광객이 많아서 외화가 유입되는 씨엠립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것이다. 북부 산간지방에서는 하루가 아닌 한달의 수입이 1달러를 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가난하다 말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돈 자체가 아예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물물교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원달러피플' 이라고 부른다. 이런 그들의 삶이 고달프고 가난하고 괴로울 것이라 잠시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 이들은 80년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