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하늘 No.124 [연작] 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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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ldi] Cello Concerto RV424 B Minor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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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 괴테 - 9월 10일 로테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도록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네. 달은 너도밤나무 숲의 꼭대기에 걸려 우리 앞에 펼쳐진 언덕을 구석구석 비추고 있었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었네. 우리가 있는 장소가 깊은 암흑에 싸여 있는 아늑한 곳이 있었는데, 이윽고 로테가 말문을 열었네. "달밤에 산책을 하면, 저는 언제나 돌아가신 분들 생각이 나요. 자꾸만 죽음이라든가 내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도 언젠가는 저세상에 갈 게 아니예요?" 로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네. "베르테르 씨, 우리는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요? 서로가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6월 16일 그렇다네. 나는 다만 한 사람의 나그네. 이 지상의 한 순례자일세.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일까?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No. 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2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5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6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Vivaldi] Cello Concerto RV424 B Minor (클래식 OST)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https://youtu.be/dzWgqotZsKU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 독일의 문호. 세계 4대 시성 중 한 명. 작가 스스로 한평생 '베르테르의 체험'이라는 것을 겪으며 [탓소] [친화력]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 줄거리 ------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베르테르는 시골에서 열리는 무도회에서 여섯 명의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 롯테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베르테르는 롯테의 아름다운 매력에 끌려 매일처럼 만나러 갔다. 이윽고 여행에서 돌아온 롯테의 약혼자 알베르트와도 곧 친해질 수 있었다. 알베르트는 온건한 이성가이며, 자신은 미친 듯한 정열가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어느 날 저녁, 셋이서 넓은 정원을 산책하다 알베르트가 없는 사이 롯테는 베르테르에게 "죽은 뒤에도 다시금 당신을 만날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 약혼자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베르테르의 마음은 괴롭기 한이 없었다. 롯테 곁을 떠나 베르테르는 어느 지방에 가서 잠시 관리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사와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사사건건 충돌해, 사직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알베르트는 롯테에게 베르테르와 만나지 말라고 하고, 베르테르는 죽음을 결심하고, 당분간 오지 말라는 롯테의 말도 무시한 채 알베르트가 없는 롯테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롯테 앞에 몸을 던지고 단 한번 롯테의 입술에 미친 듯이 입맞추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 간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렸던 권총으로 자살하고,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다.

https://skymoon.info/a/PhotoEssay/124  

따스한 봄이 오면 좋은 흙에서 자라서 햇볕을 많이 받은 꽃이 가장 먼저 가장 이쁘게 핀단다. 하지만 가장 먼저 지는 꽃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한 꽃들이지 [하늘-봄날의 꽃을 기억하며]

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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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유난히 매서웠던 이번 겨울에 TV 광고에 마음이 혹해서 무작정 떠난 여름으로의 여행... 영하 2도의 한국을 떠나 섭씨 39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의 캄보디아를 지나 서늘한 가을 날씨의 베트남 하롱베이까지 여름옷도 겨울옷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으로 다녔다. 풍경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눅눅한 한 장의 노란 수건이었다. 그 곁에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몇몇의 옷가지들이 널린 빨랫줄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하롱베이의 겨울은 우리나라처럼 매섭진 않지만 내내 비가 오고 안개가 끼는 습한 기후였다. 한국의 10월 하순쯤 되는 온도에서 이런 습기는 금새 온몸을 식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날씨에 난방도, 전기도 제대로 없는 물 위의 판자집에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의 옷가지가 겨우 이것뿐이라니... 새롭게 페인트 칠한 판자 벽과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하트를 그려둔 이 집은 신혼 살림을 막 시작한 집이었다. 수건 한 장 보송한 것 쓰기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그들의 신혼은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부터 쌓였던 어떤 감정들이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수건 한 장에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느꼈다. ---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뒤돌아 서는 것이었다. 그저 가을날씨로만 느끼는 나는 이들의 겨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만나

여행 III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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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h Jones] Seven Years 여행 III (모스크바) 러시아에 도착하니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싯구절이 떠올랐다. 왜 삶이 나를 속여도 슬퍼하지 말아야 할까? 지난 추억은 결국 소중해진다는 푸슈킨의 결론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사람은 과거에 사는 걸까? 아니면 미래에 사는 걸까? 현재라는 시간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 붉은 광장 ==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 것은 크라스나야 라는 러시아의 고어에서 유래한다. 원래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크라스나야 라는 말은 지금은 붉은 광장 이라는 말로 의미가 통하고 있지만 본래는 아름다운 광장 이라는 의미였다.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며 15세기경만 해도 흙벽으로 둘러싸인 키타이 고로트라는 지구에 수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어 노점을 벌이던 곳이다. 붉은 광장의 퇴적토는 4M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에 의해 1세기에 1M 비율로 토사가 쌓인다고 한다. 이 사이 붉은 광장을 밟고 지나간 사람은 얼마나 많은런지... 위기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타타르인의 침입을 막으려고 사람들이 달려온 것은 이 곳이 붉은 광장이라 불리기 한 세기 앞의 일이다. 미닌과 보자르스키가 폴란드를 격퇴한 것은 광장에 토사가 쌓이기 시작하던 무렵이고 농민 반란의 주

여행 (로만틱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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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로만틱가도) 그런 곳이 있다. 죽어서 묻히고 싶은 곳.. 한참을 산을 올라서 만난 강 너머의 초원을 보면서 내가 죽으면 저 곳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이 곳에 있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이 곳에 나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리란 걸 안다. 세상 속에 너무 많은 욕심을 남기는 것은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월을 잡으려는 것처럼 부질 없는 일이다. 로렐라이 언덕 라인강을 내려가는 여행중의 하일라이트, 하이네의 시가 너무나 유명하게 만든 로렐라이. 높이 130m의 바위산 밑을 라인강의 물줄기가 굽이치고 있다. 빠른 물살과 심한 커브로 예전에는 배의 조난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그것이 사람을 물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마성의 처녀의 전설을 낳았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로만틱가도 독일의 아버지강으로 불리는 라인 강은 예부터 유럽 교역의 중심 수로로 총길이 1,320 킬로미터의 국제하천이다. 라인강 주변에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로렐라이 바위 등이 유명하며 특히 마인츠에서 코블렌츠 사이의 절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로만틱 가도'이라고 불린다. 배를 타고 라인강의 정취를 느끼면서 유유히 독일의 남북을 가로지르며 나아가 보면 비로소 독일 여행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