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하늘 No.124 [연작] 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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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ldi] Cello Concerto RV424 B Minor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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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 괴테 - 9월 10일 로테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도록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네. 달은 너도밤나무 숲의 꼭대기에 걸려 우리 앞에 펼쳐진 언덕을 구석구석 비추고 있었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었네. 우리가 있는 장소가 깊은 암흑에 싸여 있는 아늑한 곳이 있었는데, 이윽고 로테가 말문을 열었네. "달밤에 산책을 하면, 저는 언제나 돌아가신 분들 생각이 나요. 자꾸만 죽음이라든가 내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도 언젠가는 저세상에 갈 게 아니예요?" 로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네. "베르테르 씨, 우리는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요? 서로가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6월 16일 그렇다네. 나는 다만 한 사람의 나그네. 이 지상의 한 순례자일세.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일까?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No. 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2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5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6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No. 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Vivaldi] Cello Concerto RV424 B Minor (클래식 OST)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hoto-Image https://youtu.be/dzWgqotZsKU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 독일의 문호. 세계 4대 시성 중 한 명. 작가 스스로 한평생 '베르테르의 체험'이라는 것을 겪으며 [탓소] [친화력]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 줄거리 ------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베르테르는 시골에서 열리는 무도회에서 여섯 명의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 롯테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베르테르는 롯테의 아름다운 매력에 끌려 매일처럼 만나러 갔다. 이윽고 여행에서 돌아온 롯테의 약혼자 알베르트와도 곧 친해질 수 있었다. 알베르트는 온건한 이성가이며, 자신은 미친 듯한 정열가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어느 날 저녁, 셋이서 넓은 정원을 산책하다 알베르트가 없는 사이 롯테는 베르테르에게 "죽은 뒤에도 다시금 당신을 만날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 약혼자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베르테르의 마음은 괴롭기 한이 없었다. 롯테 곁을 떠나 베르테르는 어느 지방에 가서 잠시 관리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사와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사사건건 충돌해, 사직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알베르트는 롯테에게 베르테르와 만나지 말라고 하고, 베르테르는 죽음을 결심하고, 당분간 오지 말라는 롯테의 말도 무시한 채 알베르트가 없는 롯테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롯테 앞에 몸을 던지고 단 한번 롯테의 입술에 미친 듯이 입맞추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 간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렸던 권총으로 자살하고,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다.

https://skymoon.info/a/PhotoEssay/124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애인(愛人)아. 너를 사랑함으로 너를 사랑함으로 정녕 나에게 기쁨이 있단다 [하늘-너를 사랑함으로]

가는 자(者)와 남은 자(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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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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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어린 날 희미해져가는 추억 과거의 상념 슬플 건 없지만 가슴 한 켠으로 느끼는 허전함 이젠 기억으로만 남을 이곳의 시간들에게 소리 없는 작별 인사를 한다. 그때는 키가 낮은 나였으리라. 작게 흐르는 시냇물을 기뻐했으리라. 그 시간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안녕... 너와집 ----- 벼농사가 되지 않아서 초가를 이지 못하였다. 거친 나무들을 내내 깍아 지붕을 이고 벽을 치고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다. 삶의 가치가 소유에 있지 않음을 아프게 바라보며 나는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는다. 성긴 나무벽 사이로 들어치는 바람보다 더한 추위를 느끼는 가슴이 시린... 철길 ----- 그것은 삶의 길이었다. 이 거친 산야에서 탈출을 위한 쇠로 만든 길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했다. 한낱 검은 돌이지만 희망으로 가는 차표라고 생각했다. 아. 강원도 ----- 거칠고 지긋지긋한 나무와 돌들이 아름다운 모습이란 걸 느끼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산중턱을 깍아 화전을 일구면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쟁기를 부러뜨리는 거친 돌뿐이었을테니... 끝없는 산과 산 깊어 가는 가을 삶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상념을 떠올리다. A. 탄광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어린 날 희미해져가는 추억 과거의 상념 슬플 건 없지만 No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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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캄보디아 출사여행을 다니며 느낀 생각이지만 연작에 포함될 내용은 아니어서 캄보디아 연작의 끝으로 붙여 봅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손가락을 하나 치켜드는 것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한참이 지나서 가이드가 이야기 해주기를 "1달러만 주세요" 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의 물가와 인건비를 생각해서 1달러만 주세요 라는 것을 우리나라 말과 시세로 환산하여 번역하면 "3만원만 주세요" 라는 뜻이 된다. 이 나라에서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큰 돈이 생길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관광객이라도 워낙 많은 구걸자를 만나기 때문에 처음 한두번 말고는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관광객 입장에서 구걸이 아니라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도 살만한 것도 없다. 관광객이 많아서 외화가 유입되는 씨엠립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것이다. 북부 산간지방에서는 하루가 아닌 한달의 수입이 1달러를 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가난하다 말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돈 자체가 아예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물물교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원달러피플' 이라고 부른다. 이런 그들의 삶이 고달프고 가난하고 괴로울 것이라 잠시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 이들은 80년대까지

가수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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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아름다운 강 동강은 송천과 골지천으로 시작하여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서 만나 비로소 조양강이 된다. 조양강은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서 오대천과 만나 살을 찌우고 정선읍을 가로질러 가수리에서 사북 고한에서 내려오는 동남천과 몸을 섞으면서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동강의 첫 시작 가수리. 정선에서 가수리 초입까지는 6킬로 정도의 거리이다. 평창 방면으로 42번 국도로 조양강을 따라가다 보면 광하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밑으로 내려서면 가수리로 가는 길이다. 가수리는 수매, 북대, 갈매, 가탄, 유지, 하매 등 6개의 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6개 부락 통틀어 봐야 50여호 남짓한 이곳은 고추와 옥수수 농사가 주업이다. 오송정과 느티나무 그리고 가수분교가 있는 곳이 '수매'다. 가수리는 물이 아름답다(佳水)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물이 아름답다는 '수매'는 그 본래 이름이 '수며'였다. 옛날 신라가 남진하던 고구려 세력을 몰아내고 한강 상류지역을 손에 넣으면서 명명한 것이라는데, 땅이름은 삼국시대에 생겨났지만, 마을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길다. 가수리 분교에는 22명의 아이들이 다닌다. 수매, 북대와 멀리 갈매 부락에서 모여든 아이들은 올해에도 또 두 명이 도회지로 떠난다. 이곳에서 만난 민정이(2학년 9살)는, "이윤미는요 2월에 이사 가고여, 전동연이는요 3월에 이사 간데요." 영근이 오빠(5학년), 숙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