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하늘 No.181 [연작] 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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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imon] April Come She Will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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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캄보디아 출사여행을 다니며 느낀 생각이지만
연작에 포함될 내용은 아니어서 캄보디아 연작의 끝으로 붙여 봅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No.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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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손가락을 하나 치켜드는 것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한참이 지나서 가이드가 이야기 해주기를 "1달러만 주세요" 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의 물가와 인건비를 생각해서 1달러만 주세요 라는 것을 우리나라 말과 시세로 환산하여 번역하면 "3만원만 주세요" 라는 뜻이 된다. 이 나라에서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큰 돈이 생길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관광객이라도 워낙 많은 구걸자를 만나기 때문에 처음 한두번 말고는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관광객 입장에서 구걸이 아니라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도 살만한 것도 없다. 관광객이 많아서 외화가 유입되는 씨엠립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것이다. 북부 산간지방에서는 하루가 아닌 한달의 수입이 1달러를 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가난하다 말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돈 자체가 아예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물물교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원달러피플' 이라고 부른다. 이런 그들의 삶이 고달프고 가난하고 괴로울 것이라 잠시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 이들은 80년대까지 계속된 학살(1,2차)로 인하여 전 인구의 1/3이 넘는 인구들이 죽임을 당했던 전 세계적으로도 사람에 의한 대재앙으로 꼽는 유명한 킬링필드의 주인공들이다. [킬링필드 참고자료 : 위키백과] 그들을 죽인 자들 역시 캄보디아인이었으며 같은 국가, 같은 동족으로부터 살해 당했다. 분노를 표출할 곳도 없다. 살해한 자 역시 이웃이었으며 아들이었으며 친지였다. 살인을 주도한 폴포트의 혁명군 중 많은 숫자가 12세 ~ 16세의 어린 아이들이었으며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잔악한 살인일수록 깊은 충성심이라 생각하며 비싼 총알을 쓰지 않고 싼 가격으로 많은 인원을 죽이기 위해 비닐 봉투로 머리를 씌우고 톱처럼 생긴 열대식물 줄기로 목을 자르고 어린 아이는 다리를 잡고 야구배트처럼 머리를 벽에 쳐서 죽였다. 가격이 싼 살인이라는 말이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존재했었다. 얼마전까지도 전쟁으로 인하여 아직도 많은 무기들이 민간에 있으며 이로 인해 쉽게 살인이 이루어지고 또 그만큼 쉽게 잊혀진다. 이곳에서는 매춘을 하는 10대 소녀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들 중 많은 비율이 이미 에이즈환자이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그리고 지금도 죽음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에게 현재는 천국이다. 주변에 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차츰 죽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수십년의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을 벗어나는 지금의 하루 하루는 그들에게는 행복으로 인식되고 있다. --- 가장 큰 행복은 살아 있음 이다. 살아 있는 이순간이야 말로 가장 경이롭고 행복한 순간이다.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은 "생존" 일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고통일지라도 감당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사실을 가끔씩 잊을 때가 있다. 이들에게 부과 가난을 가지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불경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 글은 2004년도에 쓰여진 글입니다. 지금의 캄보디아 상황을 그때보다는 훨씬 더 좋은 상황이 되었으며 이 글은 현재에는 맞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Paul Simon] April Come She Will (The Paul Simon Song Book-1965)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Photo-Image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Photo-Image https://youtu.be/IuF07tScMCQ https://youtu.be/NlXlytdJUgo
April come she will 4월이 오면 그녀가 올 거에요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봄비로 시냇물이 풍성하게 넘쳐 흐를 때 May, she will stay 5월엔, 그녀는 머물거에요 Resting in my arms again 내 품에 다시 안겨서 June, she'll change her tune 6월엔, 그녀는 그녀의 태도를 바꾸어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불안한 걸음으로 밤에 배회할 거에요 July, she will fly 7월엔, 그녀는 날아갈 거에요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날아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August, die she must 8월엔, 그녀는 죽고 말거에요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가을 바람이 싸늘하고 차갑게 불어올 때에 September, I'll remember 9월엔 나는 기억할 거에요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한 때 새롭던 사랑이 이제 시들어 가는 것을

https://skymoon.info/a/PhotoEssay/181  

행운은 자주 문을 두드리나 미련한 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덴마크속담]

가는 자(者)와 남은 자(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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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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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어린 날 희미해져가는 추억 과거의 상념 슬플 건 없지만 가슴 한 켠으로 느끼는 허전함 이젠 기억으로만 남을 이곳의 시간들에게 소리 없는 작별 인사를 한다. 그때는 키가 낮은 나였으리라. 작게 흐르는 시냇물을 기뻐했으리라. 그 시간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안녕... 너와집 ----- 벼농사가 되지 않아서 초가를 이지 못하였다. 거친 나무들을 내내 깍아 지붕을 이고 벽을 치고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다. 삶의 가치가 소유에 있지 않음을 아프게 바라보며 나는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는다. 성긴 나무벽 사이로 들어치는 바람보다 더한 추위를 느끼는 가슴이 시린... 철길 ----- 그것은 삶의 길이었다. 이 거친 산야에서 탈출을 위한 쇠로 만든 길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했다. 한낱 검은 돌이지만 희망으로 가는 차표라고 생각했다. 아. 강원도 ----- 거칠고 지긋지긋한 나무와 돌들이 아름다운 모습이란 걸 느끼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산중턱을 깍아 화전을 일구면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쟁기를 부러뜨리는 거친 돌뿐이었을테니... 끝없는 산과 산 깊어 가는 가을 삶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상념을 떠올리다. A. 탄광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어린 날 희미해져가는 추억 과거의 상념 슬플 건 없지만 No

Now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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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캄보디아 출사여행을 다니며 느낀 생각이지만 연작에 포함될 내용은 아니어서 캄보디아 연작의 끝으로 붙여 봅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캄보디아에서의 행복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손가락을 하나 치켜드는 것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한참이 지나서 가이드가 이야기 해주기를 "1달러만 주세요" 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의 물가와 인건비를 생각해서 1달러만 주세요 라는 것을 우리나라 말과 시세로 환산하여 번역하면 "3만원만 주세요" 라는 뜻이 된다. 이 나라에서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큰 돈이 생길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관광객이라도 워낙 많은 구걸자를 만나기 때문에 처음 한두번 말고는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관광객 입장에서 구걸이 아니라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도 살만한 것도 없다. 관광객이 많아서 외화가 유입되는 씨엠립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것이다. 북부 산간지방에서는 하루가 아닌 한달의 수입이 1달러를 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가난하다 말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돈 자체가 아예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물물교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원달러피플' 이라고 부른다. 이런 그들의 삶이 고달프고 가난하고 괴로울 것이라 잠시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 이들은 80년대까지

가수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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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아름다운 강 동강은 송천과 골지천으로 시작하여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서 만나 비로소 조양강이 된다. 조양강은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서 오대천과 만나 살을 찌우고 정선읍을 가로질러 가수리에서 사북 고한에서 내려오는 동남천과 몸을 섞으면서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동강의 첫 시작 가수리. 정선에서 가수리 초입까지는 6킬로 정도의 거리이다. 평창 방면으로 42번 국도로 조양강을 따라가다 보면 광하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밑으로 내려서면 가수리로 가는 길이다. 가수리는 수매, 북대, 갈매, 가탄, 유지, 하매 등 6개의 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6개 부락 통틀어 봐야 50여호 남짓한 이곳은 고추와 옥수수 농사가 주업이다. 오송정과 느티나무 그리고 가수분교가 있는 곳이 '수매'다. 가수리는 물이 아름답다(佳水)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물이 아름답다는 '수매'는 그 본래 이름이 '수며'였다. 옛날 신라가 남진하던 고구려 세력을 몰아내고 한강 상류지역을 손에 넣으면서 명명한 것이라는데, 땅이름은 삼국시대에 생겨났지만, 마을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길다. 가수리 분교에는 22명의 아이들이 다닌다. 수매, 북대와 멀리 갈매 부락에서 모여든 아이들은 올해에도 또 두 명이 도회지로 떠난다. 이곳에서 만난 민정이(2학년 9살)는, "이윤미는요 2월에 이사 가고여, 전동연이는요 3월에 이사 간데요." 영근이 오빠(5학년), 숙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