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가격

하늘 No.7 [ETC]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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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 De Aardappeleters - Vincent van Gogh


* 자유에 대한 가격

얼마 전 사진을 배우시려는 분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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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고흐의 동생 테오는 네덜란드 촌동네에서 파리로 유학을 보낸 고흐 형님에게 이 그림에 대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흐는 이전까지는 습작일 뿐 화가로써 제대로 된 작품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며 자신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 들떠서 편지를 보냅니다.
테오는 집안의 여력을 몰아 고흐의 화가 경력을 밀어주며 그나마 고흐의 작품을 팔아보려고 제대로 된 전시회를 처음으로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과 들뜬 형님의 편지를 보며 테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 짐작은...
'이걸 누구한테 팔지? 다락방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한테 팔아야 하나? 그 건물주에게 팔아야 하나?'
'아이고 형님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고요? 똥거름 냄새 나는 그림을 귀족들이 집안에 들이겠어요?
구매자가 황금색 벽에 이 그림을 걸어야 한다고? 그 사람들이 볼 때는 이 그림은 그냥 거지 그림인데? 그 분들 귀한 벽이 아까워서라도 안 걸겠어요!!'

테오는 평생을 형님을 지원했지만 철없는 형님은 팔릴만한 그림을 한 장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압권은 그 비싼 물감으로 그린 귀 잘린 자화상이었습니다. 결국 생전에 단 한 장의 그림을 판매한 최악의 판매이력만 남겼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은 그림을 팔아 살아야 했으며 생계 이전에 물감 구입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자유는 참 비싸고 얻기 힘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고흐는 그 비싼 자유를 마음껏 누렸지만 동생 테오의 성공과 집안의 부흥, 그리고 그의 삶의 길이까지도 그 대가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유명 미술관을 관람해 보면 당시 돈 있는 사람이 절대 구입하지 않을 것 같은 수많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 화가들은 모두 그 자유의 대가를 치르며 그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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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비싼 자유가 공짜로 손 안에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셔터를 눌러 결과물을 보는데 그리 돈이 들지 않습니다.

처음 카메라를 들었던 날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프레임에 담으며 즐거워합니다.
사진을 배우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에게 인기 있는 사진을 촬영하고 싶어 합니다. 나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었는지도 가물거리게 됩니다. 때로는 사진 촬영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을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합니다.

타인의 기쁨을 위해 별 대가 없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사용할 만큼 이타적이시라면 사진으로 칭찬을 구하지 말고 봉사활동이 나에게도 더 저렴하고 상대방에게도 더 효과적입니다.
힘들게 만든 자신의 시간과 돈으로 하는 사진 취미라면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자유가 지금은 공짜이긴 하지만 사실 참 귀중하고 한정적인 자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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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분은 남들이 알아주고 주목해 주는 촬영기법을 배우러 떠나셨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눈에 띄는 팁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기본에 대해 배울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ps1; 사실 초보분들이 재미있을만한 기법을 알려드리며 찬찬히 이야기해도 되는데 첨부터 너무 과격하게 말했나 하며 약간 반성했습니다. ^^;

ps2; 예전에 은결님이 무슨 수자원공사에서 진행하는 사진 공모전에 참가해보고 싶다고 아래 링크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은 훌륭하지만 아마도 높은 확률로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 잠시나마 테오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수자원공사 공모인데 물이 말라서 고기가 ... ㅋㅎ ^^
https://munifotos.tistory.com/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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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고흐가 테오에게 "감자 먹는 사람들" 작품을 완성 후에 쓴 편지입니다. 아래 편지를 읽다보면 동생 테오의 속터지는 소리가 ...

출처 : 반고흐, 영혼의 편지 [감자 먹는 사람들]
https://blog.naver.com/ipssinhada2/221617768139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내용일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최종 그림은 기억을 더듬어 그리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되겠지만 ,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작업에 임했기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뭐냐.'행동하고 창조하는 것'아니냐.

'감자먹는 사람들'은 황금색과 잘 어울릴 것 같다.​ 혹은 짙게 그늘진 잘익은 곡물 색의 벽지를 바른 벽 위에 걸어놓아도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고 그림을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어둡거나 흐린 배경에서는 이 작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의 내용이 아주 어두운 회색조의 실내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삶 속에서도 , 램프가 하얀 벽 윌 뿜어내는 열기와 불빛은 관찰자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 장면을 황금색 불빛 속에서 보게 된다. 물론 관객은 그림 바깥에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림 전체가 뒤쪽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그림의 주변에는 짙은 황금색이나 구릿빛이 칠해져 있어야 한다.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말아라. 황금빛 색조와 함께 배치해야 그림이 더 잘 살아난다.

불행하게도 흐리거나 검은 배경에 놓인다면, 대리석 같은 질감이 죽어버릴 것이다.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황금색이 이것을 돋보이게해준다. 어제 에인트호벤에 사는 그림 그리는 친구의 집에 그 그림을 가지고 갔다. 사흘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그림에 달걀 흰자위를 칠하고, 약간이 세부 손질을 해서 마무리하려 한다.

​친구는 색 다루는 법을 배우려고 아주 열심인데, '감자 먹는 사람들'에 특히 매료되었다. 석판화를 제작하기 위해 그렸던 습작을 이미 본 적 있는 그 친구는 내가 색채와 데생을 그 정도로 잘 다루리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도 모델을 두고 그리기 때문에 농부의 머리나 손, 손가락이 어떠한 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는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겨울 내내 이 직물을 짜낼 다양한 색채의 실을 손에 쥐고서, 그 결정적인 자임새를 찾아왔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모양을 한 천에 불과하지만, 그 천을 짠 실은 세심하게, 그리고 특정한 규칙에 따라 선택되었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 처녀는 날씨와 바람,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가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들이 입는 옷을 걸친다면, 특유의 개성은 사라져버릴것이다. 또한 농부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고 신사복을 차려입었을 대보다 작업복을 입고 밭에 나가 있을 때가 더 좋아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농부의 삶을 담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마구간 그림이 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훌륭하다고 해야겠지. 바로 그게 마구간이니까.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네가 이 그림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게 될런지 궁금하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너도 알다시피 근래 며칠간은 물감 때문에 고생했다.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는 그림을 망칠 각오를 하지않고는 붓질 한번 맘대로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정할 때는 작은 붓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해야했다. 가끔 그림을 친구에게 가져가서 혹시 내가 그림을 망치는건 아닌지 물어본 것도, 마지막 손질을 그의 작업실에 가서 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너도 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걸 확실하게 알게 될것이다. 네 생일에 맞추지 못한것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1885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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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빈센트 반 고흐
https://ko.wikipedia.org/wiki/%EB%B9%88%EC%84%BC%ED%8A%B8_%EB%B0%98_%EA%B3%A0%ED%9D%90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 De Aardappeleters - Vincent van Gogh
https://ko.wikipedia.org/wiki/%EA%B0%90%EC%9E%90_%EB%A8%B9%EB%8A%94_%EC%82%AC%EB%9E%8C%EB%93%A4
https://www.vggallery.com/visitors/00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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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Ilya Repin)

러시아에서 현재까지도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일리야 레핀의 이야기를 함께 해 보려 합니다.
그는 화가로 후대는 물론 당대에서도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습니다. 중간에 미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 화풍으로 사진보다도 더 정교하게 빛을 컨트롤하고 세밀한 디테일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명성을 지닌 화가였으니 웬만한 그림들은 잘 팔렸을 것이고 생계에 지장이 없었을 테지만 그의 그림 중에 잘 팔릴만한 그림과 안 팔릴만한 그림들을 함께 그렸습니다.
주로 행사화, 역사화, 초상화 등은 의뢰를 받아 선금 받고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잘 팔릴 것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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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년 5월 7일 국무원 건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 - 국무원은 마린스키 궁전
Ceremonial Sitting of the State Council on 7 May 1901 Marking the Centenary of its Foundation (1902–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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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알렉산더 3세가 페트로프스키 궁전에서 지방 정부 관리들을 접견하다
Tsar Alexander III receives local government officials at Petrovsky Palace (1886)


[잘 안 팔릴 것 같았지만 명성 덕에 잘 팔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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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크스 현의 십자가 행렬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1880–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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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Barge Haulers on the Volga (1870–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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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 조각상 https://geometki.com/en/places/65cfadf6be9b8


[욕 얻어 먹을 것 같은 그림인데 결국 황제에게 전시 금지 당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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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뇌제, 아들을 죽이다. 1581년 11월 16일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Tretyakov Gallery (1885)
작품 설명 : https://youtu.be/teMYxKzO5-s

그는 러시아에서 부와 명성을 지녔지만 러시아 공산화를 지지하는 시위대를 황실에서 유혈 진압하자 교수직을 사임합니다. 또한 공산화(러시아 혁명, 1917)가 이루어지자 그 부분에 대해서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산화 이후 핀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레닌의 초상화를 그려주면 러시아 예술 영웅으로 모시겠다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남은 여생을 핀란드에서 가난하게 살게 됩니다.
아래는 말년에 핀란드에서 그린 작품입니다.

[말년에 마음 편하게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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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자유
What Freedom!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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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Ilya_Repin
https://cafe.daum.net/see17/5Lak/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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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면 미쳐버린다"…아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 뭐길래
https://www.arte.co.kr/art/theme/7156

예나 지금이나 미술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난 화가들은 대개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처음 선진 미술을 접한 화가들은 큰 충격과 감동을 받습니다. '세상에 이런 멋진 게 있었다니!' 그리고 현지에서 유행하는 화풍이나 기법을 따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습니다. "이런 건 우리(서양 주류) 미술을 베낀 거잖아. 개성도 없고 깊이도 없어."

레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처음 파리에 도착한 그는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그림을 몇 점 그렸지만,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레핀은 결심했습니다. '내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그림, 나만의 그림을 그리자. 러시아의 역사와 민중들을 그리는 거야. 중요한 주제인 만큼 인상주의 그림보다 좀 더 사실적으로, 무게감 있는 작품을 신중하게 그려야겠다.'

...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레핀은 1930년 8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죽기 전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 레핀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 저는 태어나 너무나 많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제게 삶은 순탄하고 즐거운 것이었고, 과분한 명성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흙 속에 눕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항상 관대했던 이 아름다운 세상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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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에 대한 가격
= https://skymoon.info/a/PhotoNot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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