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방울의 회상

하늘 No.81 [연작] 1 6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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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Richter] Vivaldi-The Four Seasons, Winter 2  


어느 물방울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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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방울의 회상

한 방울..
두 방울...

얼었던 겨울이
느끼기도 어렵게
조금씩
녹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흘러갑니다.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No.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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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이름도 갖지 못했던 작은 물방울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작은 굽이를 돌고 너른 모래톱을 느긋이 지나고 폭포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너무 넓고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이 바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던 날 몸이 점점 가벼워집니다.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나는 이제 물방울이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몸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아주 작은 미풍에도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방울이었을 때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가볍고 빨라졌습니다. 그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끝없이 높고 넓은 세상이 보입니다.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을까? 자유의 행복과 존재의 의심을 함께 간직한 채 그렇게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만났습니다. 내 몸이 하얗고 작은 너무나 아름다운 눈의 결정으로 변해갑니다.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곁에 보이지 않았던 물방울들도 저마다 다른 아름다운 눈의 결정으로 변해 가는 것이 보입니다. 곁에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그들 역시 나처럼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나 내가 혼자만 있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반갑고 기쁩니다. 나도 그들도 사실은 한 없이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손을 잡고 부둥켜안습니다. 서로 꼭 끌어안으니 너무도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런 포옹은 서로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가볍지도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나는 그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눈 결정이 아니라 이젠 눈송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무게 때문에 하늘 위에 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땅 위로 떨어집니다. 소리 없이 숲 속, 나무 위 사르락 사르락 쌓여갑니다. 내가 내려앉은 땅 위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위로도 계속 눈송이들이 쌓여갑니다. 내 위에 쌓이는 눈들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숨이 막히고 답답합니다. ... . . . . . . . . ... 그만 얼음이 됩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차가운 시간이 왔습니다. 나는 갇혔습니다. 스스로 모습도 보지 못해 두려워하다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겨나게 되어 그저 내 곁에 아름다운 이들을 안고 기뻐한 대가가 이렇게 차가운 눈 아래 얼음에 갇혀버리는 것이라니... 나는 절망했습니다. 이젠 시간도 얼어서 멈추어 버린 것 같습니다.

No. B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를 바다에서 하늘로 보내주었던 그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날 문득 눈을 떠보니 나는 얼음 속에서 나와 또다시 물 한 방울이 되어 흘러갑니다.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그 옛날 강물 속에서 이름 없는 물방울이었을 때 내가 어디에서 왔었는지....

No. C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No. D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No. E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Photography : 하늘 Edited, Arranged, Produced : 하늘 2002.12.09 해인사 Canon EOS D60 Canon EF 70-200mm f/2.8 L IS SkyMoon.info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Max Richter] Vivaldi-The Four Seasons, Winter 2 (Recomposed By Max Richter, Vivaldi - The Four Seasons)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어느 물방울의 회상 Photo-Image https://youtu.be/_IoUt373aQY https://youtu.be/RO2x6ecB66M https://youtu.be/vrJq6x3lsV4

https://skymoon.info/a/PhotoEssay/81  

오지 않은 시간을 흘려 보내며 일어나지 않은 일을 회상한다 [하늘-선2 (禪2)]
  1 Comments
하늘 2017.09.09 17:25  
모노
너무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늘 하늘님 사진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  즐감 했습니다

커피
오~~ 아침부터 이렇게 감동을 주시다니...
사진도 너무 좋고 글도 너무 좋네요
잘 봤습니다 ~~ ^^

류비아
존재에 대한 것을 물방울 하나로 풀어내다니요. 웬지 아침부터 마음이 묵직해 오네요. ^^;; 즐감요~~~
 
쿠키
와~ 넘 좋아요~
글도 사진도 넘 감동이네요..
하늘님이 포토 에세이 같은거 하나 내시면 대박 날 거 같아요^^
혹시 만약에 책 내시면 할님 친필 사인 꼭 해주세요~^^

류비아
오늘 같은 날 하늘님 이 글 읽으면서 내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힘내고 있네요. 정말 두고두고 몇번을 읽어도 좋네요.

Now  어느 물방울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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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방울의 회상 한 방울.. 두 방울... 얼었던 겨울이 느끼기도 어렵게 조금씩 녹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흘러갑니다. 나는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이름도 갖지 못했던 작은 물방울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작은 굽이를 돌고 너른 모래톱을 느긋이 지나고 폭포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너무 넓고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이 바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던 날 몸이 점점 가벼워집니다.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나는 이제 물방울이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몸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아주 작은 미풍에도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방울이었을 때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가볍고 빨라졌습니다. 그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끝없이 높고 넓은 세상이 보입니다.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을까? 자유의 행복과 존재의 의심을 함께 간직한 채 그렇게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만났습니다. 내 몸이 하얗고 작은 너무나 아름다운 눈의 결정으로 변해갑니다.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곁에

동유럽 기차 여행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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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스캇 (Scotty - Allan Taylor) 스캇씨는 보통때처럼 향 좋은 몰트 위스키를 한 잔 하면서 오늘 아침 체크아웃 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다. 그는 숙박비가 그리 밀려 있지도 않았다. 떠나며 얼마 남지 않은 숙박비까지 모두 계산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돌아오길 기약하며 약간의 지불을 남겨 두었을 것도 같다. 나는 그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우리는 이 지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 태양보다도 훨씬 더 뜨겁고 큰 황금빛 별들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야. 우리가 태어난 별들은 너무 멀리 있어 가끔씩 그것을 잃어 버리곤 하지. 그를 찾아 가는 여행은 너무나 멀어 보여. 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야. 언젠가는 모두가 그 끝에 이르게 될 것이야. 너도 결국 그것을 알게 될 것이야. 나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친구여. 스캇씨는 크고 오래된 열두줄 기타를 둘러 매고 호텔을 떠났다. 이 곳의 연주를 마치고 스캇씨는 그의 길 위에 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이 나의 뇌리에 남아 여전히 흥얼 거리고 있다. 그의 선율이 잊혀지지 않는다. 스캇씨는 지금 밤하늘의 별에게 그의 노래를 불러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도 그의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 선율이 들려 온다. 스캇씨는 지금 어딘가에서 별과 함께 음악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 번역: 하늘 - 하늘의 세상을 보는

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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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유난히 매서웠던 이번 겨울에 TV 광고에 마음이 혹해서 무작정 떠난 여름으로의 여행... 영하 2도의 한국을 떠나 섭씨 39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의 캄보디아를 지나 서늘한 가을 날씨의 베트남 하롱베이까지 여름옷도 겨울옷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으로 다녔다. 풍경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눅눅한 한 장의 노란 수건이었다. 그 곁에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몇몇의 옷가지들이 널린 빨랫줄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하롱베이의 겨울은 우리나라처럼 매섭진 않지만 내내 비가 오고 안개가 끼는 습한 기후였다. 한국의 10월 하순쯤 되는 온도에서 이런 습기는 금새 온몸을 식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날씨에 난방도, 전기도 제대로 없는 물 위의 판자집에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의 옷가지가 겨우 이것뿐이라니... 새롭게 페인트 칠한 판자 벽과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하트를 그려둔 이 집은 신혼 살림을 막 시작한 집이었다. 수건 한 장 보송한 것 쓰기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그들의 신혼은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부터 쌓였던 어떤 감정들이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수건 한 장에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느꼈다. ---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뒤돌아 서는 것이었다. 그저 가을날씨로만 느끼는 나는 이들의 겨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만나

가수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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