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자(者)와 남은 자(者)

하늘 No.135 [연작] 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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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은행나무 침대  


가는 자(者)와 남은 자(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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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헤어짐일지라도
- 내 책상위의 천사 : 하늘 -

지금은 헤어집시다.

우리들의 만남보다
오히려 더 긴 헤어짐을
겪을지라도

지금은 헤어집시다.

한 낮의 소나기처럼
문득 떠오르는
우리들의 추억이 있더라도

지금은 우리 헤어집시다.

설령 헤어짐의 아픔을
나눌 시간들이 우리에게
모자라더라도

어쩌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긴긴 헤어짐이 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이제는 우리 헤어집시다.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No. 1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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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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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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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4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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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5 그리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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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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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7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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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 8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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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9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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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0 일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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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1 일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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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2 잊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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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작의 주제는 죽음과 사랑이었습니다. 실제 촬영장소는 무덤가였으며 No. 2 기다림과 No. 3 기억은.. 무덤가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조그만 사당이었습니다. 사진의 묘소가 어느 분의 묘소인지는 모르지만.. 출사전에 준비 삼아 읽었던 (나름대로 연관된) 옛 이야기를 인용해 봅니다.
가면 만드는 허도령 하회의 인접부락에는 허정승의 묘가 있다. 이 무덤을 타성인 류씨들이 해마다 벌초를 해 준다. 더욱이나 하회라면 생각나는 탈춤이 있는데, 이 탈춤의 제작자 역시 허도령으로 전해져 오고 있어서 이 마을에 류씨 일가 이전에 선주민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들 선주민은 풍산 류씨들에 의해 점차 쇠퇴하여 갔다. 그리고 류씨의 동족부락으로 바뀌면서 하회는 비로소 대처(大處) 거촌(巨村)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회 가면극과 허도령 안동시 풍천면 하회동에는 풍산 류씨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마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별신당이 있어 음력 정월초 이튿날이면 이곳에서 별신굿이라는 부락동신제를 지낸다. 이때 에 가면극이 행하여 졌는데 기원은 약 500년전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며 가면이 제작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회마을 동사앞마당에는 부락민 모두가 모여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기 위한 의논이 분분하였다. 놀이의 인물은 양반, 선비, 초랭이, 영감, 부네, 이매, 백정, 할매, 주지, 소등으로 결정이 되었다. 이때 총각하나가 "아닙니다요, 얼마전 윗마을에서 중이 나타나 각시를 업고 도망갔다는데 기왕지사 비뚜러진 양반사회를 풍자하기로 했으니 중, 각시 마당도 집어 넣지요, 어떻습니까?" 젊은이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찬성하였다. 온 마을 사람들은 놀이를 꾸미는데 신바람이 났다. 그도 그럴것이 이 놀이는 당시 철저한 계급사회 제도 속에서 하천배들에 의해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표현으로 지체높은 양반 지배계급에 대한 실랄한 야유와 비판으로 내용을 꾸몄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맨 얼굴로 춤을 추게 되면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다 알게 되므로 춤추는 자도 꺼리게 되고 보는 사람도 흥이 덜 나므로 탈을 만들어쓰기로 합의 되었다. 허도령은 극구 사양했으나 꿈에 마을의 수호신으로부터 가면제작의 계시를 받고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허도령은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 하회 마을의 수목이 울창한 깊고 한적한 곳에 외인의 출입을 막는 금색을 친 후 목욕재계하고 전심전력으로 12개의 가면제작에 몰두했다. 허도령은 "12개의 탈을 다 만들려면 3달을 걸려야 할텐데 모든 정성을 다하여 훌륭한 탈을 만들어야겠다. 백정에게는 사나우면서도 솔직한 모습을, 할매에게는 주름지고 고생에 찌든 늙은 탈을, 초랭이는 진짜 촐랑대는 얄밉고 익살스러운 탈을...... 섬세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놀이를 한층 즐겁게 해야지... " 허도령이 깊은 산속에서 탈 제작에 전념하고 있을 때 마을 처녀들 사이에서는 종종 화제가 되었다. 허도령의 탈 제작에 전념하는 모습이 신선 같다느니 빼어난 귀공자 같다느니 하며 은근히 사모하는 처녀들이 많았다. 신선 같다는 허도령의 모습을 소문으로 듣고 몹시 사모하던 한 처녀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여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뒤곁 은행나무에 정화수를 떠놓고 신령님께 허도령의 일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빌었다. 허도령이 탈을 만든지 석달이 다 되어가는 어느날 그 날도 처녀는 정화수를 떠놓고 막 기도를 올리려는데 이상하게도 정화수 속에 허도령의 모습과 만들어 놓은 탈들이 비치는 것이었다. 이제야 탈을 다 만들었나 보다고 생각하니 더욱 허도령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처녀는 참지 못하여 허도령의 처소를 찾아갔다. 교교한 달빛은 처녀의 가슴을 더욱 애타게 만들었다. 늦은 밤인데도 불을 밝히고 허도령은 탈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마지막 탈 이매탈의 턱을 만들려는 중이었다. 그 모습은 과연 천상의 신선이 내려와 앉은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문틈으로 훔쳐보던 처녀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입을 열었다. "허도령님, 허도령님, 작업을 잠시 멈추고 저와 이야기를 좀 나누어요 네!" 도령이 턱을 깎으려다가 여인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밖에 뉘시오?" "허도령님, 도령님이 그리워서 찾아 왔어요. 저를 좀 만나주세요?" "아뿔사! 이 부정한 계집이 탈 만드는 광경을 훔쳐보다니...." 이때였다. 갑자기 벼락이 치며 마른 번개가 번쩍이더니 허도령은 그 자리에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처녀는 기색 혼절하며 도망쳤으나 역시 벼랑에 굴러 죽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매의 턱은 완성되지 못하였고 턱 없는 이매탈이 이제까지 놀이에 쓰여지게 된 것이라 한다. 탈은 전부 12개가 완성되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3개를 가져가 지금은 9개가 남아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Photography : 하늘 Edited, Arranged, Produced : 하늘 2002.04.07 하회 별신굿 번개 Canon EOS 30, Fuji Sensia 100 Sigma 24-70/2.8, EF70-210/3.5-4.5 SkyMoon.info 가는 자(者)와 남은 자(者) Photo-Image [이동준] 은행나무 침대 OST 가는 자(者)와 남은 자(者) Photo-Image https://youtu.be/FpMUrtQyVEk

https://skymoon.info/a/PhotoEssay/135  

삶이 세상에 남길 수 있고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가슴에 담겨 있는 그 기억들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삶의 이유가 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삶의 기억]

장기면 바위섬의 일출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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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의 하드코어 출사 출사 전날 대구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날 출사라니.. 그것도 일출 촬영이라니... 하지만 무대포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들은 48시간의 하드코어 출사를 강행군 하기로 했다. 며칠전 어렵사리 섭외해 둔 알려지지 않은 일출 촬영 포인트를 찾아 갔다. 어디서 촬영할 것인가 고민하며 위치를 찾는 중 아뿔사.. 해가 어디서 뜨는지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는다. 가면서 인터넷으로 태양 일출각은 메모해 두었는데 정작 각도를 젤 수 있는 나침반이 없다. 나침반.. 나침반.. 혼자말을 되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나침반이 생길리 만무하다. 동네 어르신께 해가 어디서 뜨는지 물어보니 해야 저기 동쪽바다에서 뜨지.. 하면서 이상한 사람들 다 본다는 눈치를 보내신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단 숙소로 향했다. 아침 5시 출사지로 향했다. 다이나믹한 구름들의 모습을 보며 오늘 일출은 심상치 않을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일출전 여명도 그럴듯 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이리 저리 바삐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는 서서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순간이지만 아.. 하는 감탄사를 내 뱉었다. 바위틈으로 살짝 비치는 일출과 바위섬 건너편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 아저씨가 눈에 띄였다. 사람이 자연속에 있어 풍경으로 보일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문득

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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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1 (캄보디아, 베트남) 유난히 매서웠던 이번 겨울에 TV 광고에 마음이 혹해서 무작정 떠난 여름으로의 여행... 영하 2도의 한국을 떠나 섭씨 39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의 캄보디아를 지나 서늘한 가을 날씨의 베트남 하롱베이까지 여름옷도 겨울옷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으로 다녔다. 풍경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눅눅한 한 장의 노란 수건이었다. 그 곁에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몇몇의 옷가지들이 널린 빨랫줄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하롱베이의 겨울은 우리나라처럼 매섭진 않지만 내내 비가 오고 안개가 끼는 습한 기후였다. 한국의 10월 하순쯤 되는 온도에서 이런 습기는 금새 온몸을 식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날씨에 난방도, 전기도 제대로 없는 물 위의 판자집에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의 옷가지가 겨우 이것뿐이라니... 새롭게 페인트 칠한 판자 벽과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하트를 그려둔 이 집은 신혼 살림을 막 시작한 집이었다. 수건 한 장 보송한 것 쓰기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그들의 신혼은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부터 쌓였던 어떤 감정들이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수건 한 장에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느꼈다. ---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뒤돌아 서는 것이었다. 그저 가을날씨로만 느끼는 나는 이들의 겨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만나

곰배령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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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할아버지 곰배령 초입에는 집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허름한 시골집이 하나 있다. 그 집의 노인은 마당 한켠에 앉아서 집 앞으로 지나는 산책로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다가 지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말이라도 붙일라치면 그의 지루한 오후는 끝나고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된다. "산 길이 좁은데 등산을 하는 갑소?" "예, 그래도 사람도 없이 한적한 길이라 참 좋습니다" "길이 좁아서 나무라도 한 짐 해올라치면 길가 나뭇가지가 걸려서 영..." "하하. 그렇겠네요." "그래도 계곡물이 길 따라 있어 산 길 쉬엄쉬엄 오르며 가기는 좋지.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마당에 앉아서 지나는 사람 보는 게 제일이더만..." "경치 좋은 곳에서 쉬시며 느긋이 바라보니 좋으시겠어요" "말도 마. 얼마 전에 위암으로 수술해서 죽만 먹어야 해. 영 힘이 안 나니 하루에 반은 이렇게 쉴 수밖에..." "어르신 인상이 참 좋으신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뭐 다 삭은 노인네 찍어서 뭐하게.. 허허. 혹 잘 나오면 한 장 보내주면 좋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그 노인은 수줍게 한 마디 꺼낸다. "커피라도 한 잔 타 줄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거동도 편치 않다는 할아버지에게 차마 커피까지 얻어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돌아서서 내려오던 산을 계속 내려왔다. 차 안에서 카메라 장비를 정리하며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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