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푸른 저녁 -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 문학과 지성사)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는가. 나는 그것을 본다. 교동 시장 가는 길 - 대구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