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III (모스크바)

하늘 No.70 [연작] 5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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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h Jones] Seven Years  

여행 III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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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III (모스크바)

러시아에 도착하니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싯구절이 떠올랐다.

왜 삶이 나를 속여도
슬퍼하지 말아야 할까?

지난 추억은 결국 소중해진다는
푸슈킨의 결론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사람은 과거에 사는 걸까?
아니면 미래에 사는 걸까?

현재라는 시간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 하늘의 세상을 보는 마음 -

== 붉은 광장 ==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 것은 크라스나야 라는 러시아의 고어에서 유래한다. 원래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크라스나야 라는 말은 지금은 붉은 광장 이라는 말로 의미가 통하고 있지만 본래는 아름다운 광장 이라는 의미였다.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며 15세기경만 해도 흙벽으로 둘러싸인 키타이 고로트라는 지구에 수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어 노점을 벌이던 곳이다. 붉은 광장의 퇴적토는 4M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에 의해 1세기에 1M 비율로 토사가 쌓인다고 한다. 이 사이 붉은 광장을 밟고 지나간 사람은 얼마나 많은런지...

No. A1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위기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타타르인의 침입을 막으려고 사람들이 달려온 것은 이 곳이 붉은 광장이라 불리기 한 세기 앞의 일이다.

No. A2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미닌과 보자르스키가 폴란드를 격퇴한 것은 광장에 토사가 쌓이기 시작하던 무렵이고 농민 반란의 주모자인 스테판 라진이 처형된 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 - 붉은 광장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던 곳

No. A3 *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토사가 2M 쯤 쌓였을 무렵에는 나폴레옹 군이 쳐들어 왔고, 쌓인 흙이 3M 쯤 되던 무렵에는 그 위에서 혁명군 (적군)과 반동 세력 (백군) 간의 치열한 전쟁이 되풀이되었다. 지금은 아스팔트와 돌로 단단하게 다져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수 많은 세월들이 쌓여있다.

No. A4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붉은 광장 북쪽은 네 개의 탑을 가진 국립 역사 박물관이 있다. 원래 이곳에는 로모노소프에 의해 모스크바 대학의 작은 학교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나 1875 ~ 1881년에 세르비트와 세묘노프가 붉은 벽돌로 다시 건물을 지었는데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된 것은 혁명후의 일이다. 전시내용은 혁명 이후를 제외한 러시아의 전 역사에 관련된 것으로 석기시대 것부터 있다. - 국립 역사 박물관 -

No. A5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A6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A7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 스파스카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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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기에는 상당히 불균형적으로 보이는 성 바실리 사원은 나름대로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기묘한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포스토닉과 바르마이다. 이반 대제가 카잔 칸(汗)을 항복시킨 기념하여 짓도록 한 건물인데 1555 ~ 1560 년에 걸쳐 완성된 사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는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지 못하도록 두 사람의 눈을 뽑아버렸다. - 성 바실리 사원

No. A9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붉은 광장의 북동쪽, 레닌 묘의 맞은 편이 있는 것이 굼 백화점이다. 1890 - 1893 년에 걸쳐 세워진 이 백화점은 1953년에 대폭 수리한 모스크바 최대의 백화점이다. 내부 공간을 넓게 뚫려있는 3층짜리 건물로 1층 중앙에는 분수가 있는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다. - 굼 백화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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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굼 백화점 -

== 러시아 시내 ==

200년 이상이나 러시아 발레와 오페라의 횃불을 밝혀온 역사와 전통이 있는 극장이다. 여기에 운명을 걸었던 작곡가들은 글린카, 무소르그스키, 차이코프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곳에서 명성을 얻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오페라 가수나 무용수로는 샬리아핀, 갈리나 블라노바, 마야 프리세츠카야 등이 있다. 전속 발레단과 오페라단은 모스크바 아카데미 발레 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 볼쇼이 극장

No. B1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검은색 화강암에 '1941 ~ 1945년에 숨진 무명 용사에게 바친다. 비록 그대들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대의 숭고한 희생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씌여 있다. 별 모양을 한 중앙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으며 매일 수 많은 시민들이 아름다운 꽃다발을 바치고 있다. - 무명 용사의 묘

No. B2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B3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 마네지 광장

No. B4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B5 *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지하철은 여느 유럽국가와 동일하게 메트로라고 부르는데 시내의 주요 관광 명소는 대부분 메트로만으로 이동할 수 있다. 개찰구를 통과하면 매우 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폼이 지하 깊속한 곳에 있어서 마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 3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연인들은 이 에스컬레이터가 이동하는 동안 길고도 달콤한 키스는 나누곤 한다. 폼에 닿으면 지하철 역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것이다. - 메트로 (지하철)

No. B6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B7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1990년대 중반에 새로 건설된 곳으로 그 규모가 대단하다. 공원 중앙에 괴물을 토막 내는 말을 탄 기사 상이 있는데 말발굽 아래 나찌의 심볼이 보인다. 기사상은 15세기 러시아의 유명한 이꼰 "뱀을 무찌른 게오르기의 기적"을 본 딴 것이다. 전승기념일에는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승전을 축하한다. - 전승 공원 (전승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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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승 기념관 내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6명의 아들을 전쟁에 잃고 마지막 남은 아들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상이 있다. 천장에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모든 어머니의 눈물을 형상화한 크리스탈이 있다. 설사 이긴 전쟁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한 슬픔은 어찌할 수 없으리라. - 전승 공원 (전승 기념관)

No. B11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이곳은 원래 대리석 건물의 예수 구세주 대사원이 있던 자리였는데 1932년 높이가 415M 에 이르는 소비에트 궁전을 짓기위해 허물었다. 그러나 모스크바 강변쪽은 늪지대로 대형 건물이 들어서기 적합하지 않았기때문에 공사도중 이 계획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경하여 1960년에 직경이 130m 나 되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영장을 설립했다. 1990년 경에 구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다시금 이 자리에 그 옛날의 예수 구세주 대사원을 건립하게 된다. 이 사원을 건립할 당시 이전에 소비에트 궁전을 지을때의 지질 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이곳은 늪지로 인해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옛날에도 이곳에는 사원이 있었으므로 사원을 들어설 수 있다며 기도의 힘으로 건설을 돕겠다며 사제들과 신도들이 나서게 되고 실제로 건설에 성공하게 된다. - 예수 구세주 대사원

No. B12 *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 러시아 시내 (아르바트 거리와 모스크바 대학) ==

푸쉬킨이 어릴 적 뛰놀던 거리이며 러시아의 "몽마르뜨"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냈던 명사들로는 푸슈킨, 레르몬토프, 게르첸, 고골리, 아크사코프, 투르게네프 등이 있다. 15세기 시대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거리로써, 러시아 귀족문화의 정점이다. 지금은 보행자의 거리가 되어서 외국인들을 위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젊은 음악가들 그리고 무명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개방 후 러시아를 대표하는 젊음과 개방의 거리가 되었다. - 아르바트 거리

No. C1 *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C2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이 거리에는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벽이 있어서 항상 그의 팬들이 모여서 그를 기리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최 추모벽)

No. C3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C4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모스크바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는, 아스탄키노의 TV 탑 외에는 이 언덕이 가장 높다. 모스크바의 신혼부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난 후 무명전사의 묘에 헌화한 다음에 올라와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다. 예전에는 '참새의 언덕' 이라고 불러졌다. 여기서 바라보는 모스크바 대학의 정경이 인상적이다. - 레닌언덕(바라뵤비 언덕)

No. C5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1755년에 러시아의 위대한 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에 의해 설립된 이래 25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대학이다. 개교 당시 모스크바대학교는 역사박물관 자리에 위치했으며, 3개 학부(철학, 법학, 의학)로 출발하였다. 1917년10월 혁명이후 국립대학교로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1948년 3월 소련정부는 레닌 언덕에 새로운 대학 건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으며, 1953년 본관 완공에 이어 1970년 제1인문관, 1978년에 제2인문관 건물이 차례로 완성되었다. 현재 모스크바대학은 18개학부 및 산하 연구소에서 25,000여명의 학생, 5,000여명의 아스피란트(박사), 5,000여명의 연구원 그리고 매년 158개국에서 약 1,500여명의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 모스크바 국립대학

No. C6 *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C7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 C8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본문 자료 출처 : 서적 [세계를 간다 21. 러시아와 구소련편] (하늘 일부 수정, 추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멀지 않아 기쁨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Photography : 하늘 Edited, Arranged, Produced : 하늘 2003.08.20 - 2003.08.25 러시아, 모스크바 (Russia, Moscow) Ricoh GR21, Ricoh 21mm f/3.5 Canon EOS D30, EF 28-135mm f/3.5-5.6 IS Yashica T5D, Carlzeiss T* Tessar 35mm f/3.5 Fuji Reala 100, AutoAuto 200 SkyMoon.info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Norah Jones] Seven Years
여행 III (모스크바) Photo-Image https://youtu.be/O0I1x6Ze3IY
Spinning, laughing, dancing to her favorite song A little girl with nothing wrong Is all alone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빙글빙글 돌고, 웃고, 춤을 추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어린 소녀는 늘 혼자야 Eyes wide open Always hoping for the sun And she'll sing her song to anyone that comes along 눈을 활짝 뜨고 늘 태양을 꿈꾸지 그리고 그녀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노래를 불러줄거야 Fragile as a leaf in autumn Just fallin' to the ground Without a sound 소리도 없이 그저 바닥에 지고 마는 가을날 잎처럼 약하지 Crooked little smile on her face Tells a tale of grace That's all her own 그녀가 억지로 지은 희미한 미소는 그녀만의 은혜로움을 말해주네 Spinning, laughing, dancing to her favorite song A little girl with nothing wrong Is all alone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빙글빙글 돌고, 웃고, 춤을 추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어린 소녀는 늘 혼자야 - 작사: Lee Alexander
푸슈킨 (Aleksandr Sergeevich Pushkin)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국민 시인 푸슈킨(1799-1837)은 근대 러시아 문학의 창설자이다. 카람진의 [러시아 국가사]에도 여러 번 나오는 오래된 귀족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러시아문학에서 소외되어 있던 구어와 평민어를 러시아의 당당한 문학어로 끌어올렸으며, 경직된 고전주의 시학과 나약한 낭만주의 시학에 러시아 민중의 혼을 불어넣어 힘있는 낭만주의를 꽃피웠고 생동감 넘치는 리얼리즘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러나 푸슈킨은 세속적인 의미의 불행한 삶을 살았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경제적 곤란에 시달렸고 권력의 탄압을 받았다. 1831년 사교계의 빼어난 미인인 나탈리야 곤차로바와의 운명적 결혼은 푸슈킨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하였으며, 자신의 연애관계와 나탈리야의 무모한 사교생활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1837년 동서이자 연적인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삶은 자신의 운명과 권력과 금전에 저항한 저항의 삶이었다. 푸슈킨은 민족적 언어로써 진정한 민족문학을 창조하여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을 확립하였고, 그 이전의 러시아 문학 전부를 집대성하여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모범적 작품을 창조함으로써 '근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 1992년 1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현재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CIS)에 속해 있다. 면적 1707만 5400㎢. 인구 1억 4639만 4000명(1999). 인구밀도 8.6명/㎢(1999).정식명칭은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이다. 북쪽으로 북해, 동쪽으로 태평양에 면하고, 남쪽으로 북한,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서쪽으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라트비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노르웨이 등에 접한다. 동서길이 약 9,000km, 남북 최대길이 약 4,000km, 최소길이 약 2,500km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21개 공화국[아디게야, 바슈키리야, 부랴티야, 다게스탄,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칼미키야, 카렐리야, 코미, 마리, 모르도바, 세베로나야오세티야(북오세티야), 타타르스탄, 투바, 우드무르티야, 체첸, 잉구셰티야, 바시야, 사하(야쿠티아), 고르니-알타이, 카라챠에보-체르케시야, 하카시야] 6개 지방, 50개 주, 10개 자치관구. 특별행정단위인 모스크바 및 쌍트 뻬쩨르부르그 등 총 89개 행정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모스크바 면적 1,000㎢, 인구 840만 명(1995)이다. 영어로는 모스코우(Moscow)라고 한다. 유럽러시아 중부, 오카강 지류인 모스크바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볼가강과 오카강 사이에 있어 수운의 중계지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일개 한촌으로 발족하여 모스크바공국의 수도가 되고, 다시 러시아제국의 수도가 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모스크바는 침엽수림대와 활엽수림대의 경계에 위치하여 부근에서 수공업의 발전을 자극할 만한 원료가 많이 산출되고, 또 부근에 오카강·볼가강·드네프르강·돈강 등과 연결되는 하천수로망이 조밀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그와 같은 자연조건이 모스크바의 발전을 촉진한 하나의 조건이 된다. 모스크바는 평균 해발고도 120m의 지점에 위치하여, 모스크바강의 3단의 하안단구, 남서부의 '레닌 언덕'이라고 불리는 해발고도 250m 정도의 고지, 동부의 저지, 북부의 구릉 사면 등 기복이 많은 지형 위에 시가지가 확대·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심한 대륙성기후이고, 해마다 기후변동이 현저하다. 대체로 겨울은 한랭건조하며 길다. 상대적으로 봄·가을이 짧으며 4월말부터 기온이 올라가 서서히 여름에 들어선다. 7월이 가장 따뜻하며 이 기간에 비도 많이 내린다. 1월 평균기온 -11℃, 7월 평균기온 19℃이고, 기록상의 최고기온 및 최저기온은 각각 37℃ 및 -42℃였다. 첫눈은 9월 7일에서 11월 7일, 평균 10월 12일에 내리고, 백야현상은 6월 20일이 지난 시기에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https://skymoon.info/a/PhotoEssay/70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수선화에게]

그대가 사랑에 대해 물었었지요...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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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사랑이 아닌 것들... 그대가 제게 물었었지요. 무엇이 사랑이냐고? 위안, 위로, 동질감, 외로움, 쓸쓸함, 그리움, 쾌락, 욕구, 종족보존욕, 소유욕, 독점욕, 정복욕, 이기심, 약오름, 허영심, 대리만족, 자기만족, 증명, 확인, 감정이입, 동화, 자기애, 자기연민 학대, 최면, 두려움, 부채감, 혐오감, 질투, 시기, 불안, 체념, 나태함, 귀찮음, 습관, 관성, 도피, 복종, 비밀, 은밀함, 거울 새로움, 신선함, 설레임, 기대감, 긴장감, 궁금증, 소일거리, 도움, 구함, 존경, 경외, 호감, 보답, 공유, 전달, 책임감, 가르침, 의무감, 투자, 거래, 절약, 변화 친근함, 친숙함, 익숙함, 휴식, 기대임, 의지함, 안락함, 편안함, 교감, 나눔, 신뢰, 믿음, 뿌듯함, 황홀감, 행복감, 일체감, 애틋함, 동정심, 연민, 보살핌, 희생, 헌신 저 위에 적혀 있는 단어들을 덜어 내고 남은 것이 비로소 사랑입니다.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규칙입니다.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단어로 표현 되는 것이 아닐까요? 덜어 내야 할 단어들은 마음이라는 그릇에 함께 담겨 있지만 사랑과 쉽게 헷갈리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서로 서로 혹은 사랑과도 함께 연결되어 있어 마치 엉킨 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중 어느것이라도 당기다 보면 사랑이란 것도 따라 올 때가 있을겁니다. 그래서 이 모두를

그대가 사랑에 대해 물었었지요...III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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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마치 그릇과 같습니다. 많은 것이 담기고 때론 비울 수 있습니다. 마음에 담기는 감정들은 바깥에서 들어오기도 하고 이미 그릇에 담겨 있던 많은 것들이 서로 섞여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마음이란 그릇속에서는 언제나 많은 것들이 섞여 있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타인이 그대에게 "좋아 한다" 라는 감정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그것을 그대의 마음에 담을 수도 있고 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담았다가도 다시 비워낼 수도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단지 마음속에 담는 내용물일 뿐입니다. 비밀 하나 이야기 해 드릴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실은 없는 겁니다. 사랑은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감정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마음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사랑을 나눈다' 라는 것은 마음 일부를 나누어 주고 받는 것입니다.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이 아니라 그 그릇 일부를 떼어 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다르냐고요? 마음을 서로 나누면 감정이라는 것과는 달리 같은 재질이기에 그릇이었던 자신의 마음이 받은 마음과 섞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파란색 물과 빨간색 물이 섞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색은 다르지만 서로 같은 물이니까요. 그리고는 다른 색의 물이 되어갑니다. 자신의 마음 자체가 바뀌어 집니다. 내용물이 아니라 그릇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워질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전과는 다른 마음,

숲속에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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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숲속에 들어서다.. 1. Wandering about in the woods 낯선 길은 항상 두려움이다. 하물며 인적이 없는 숲은 두려움과 동시에 외로움이다. 낮은 억새의 바람소리도 으르렁 거리는 신음소리처럼 들린다. 강한 햇살도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거리는 바람과 그림자때문에 더더욱 혼란 스럽기만 하다. 2. 숲속의 두려움 2. Fear of wood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것 같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아무도 없고... 다시 앞을 보면 옆에서 뭔가가 휙 지나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3. 숲속의 두려움을 지나서 3. Over the fear of wood 한참을 그렇게 걷다보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조차 아득하다. 그저 낯선 느낌때문이었을까? 그저 오래간 만에 왔기 때문일까? 햇살은 다시금 따스하게 보이고 정상 부근의 나즈막한 언덕은 이제서야 정상으로 돌아온 나의 느낌을 일깨워 준다. 지나온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난 지금 희망을 느낀다... 4. 그제서야 땅을 보다. 4. Look at the ground 두려움으로 두리번 거렸던 눈동자는 어느덧 안심된 마음으로 더 이상 무언가를 찾지 않는다. 얼마나 우스운가? 두렵다는 이유로 두려운 것을 찾으려 이리 저리 눈알을 굴려 댔으니.. 왜 나는 눈을 감지 못하였을까? 푸근한 숲에 젖어들면 그제서야 고개를 숙여 땅을 보며 묵묵히 생

어느 물방울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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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방울의 회상 한 방울.. 두 방울... 얼었던 겨울이 느끼기도 어렵게 조금씩 녹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흘러갑니다. 나는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이름도 갖지 못했던 작은 물방울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작은 굽이를 돌고 너른 모래톱을 느긋이 지나고 폭포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너무 넓고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이 바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던 날 몸이 점점 가벼워집니다.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나는 이제 물방울이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몸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아주 작은 미풍에도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방울이었을 때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가볍고 빨라졌습니다. 그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끝없이 높고 넓은 세상이 보입니다.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을까? 자유의 행복과 존재의 의심을 함께 간직한 채 그렇게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만났습니다. 내 몸이 하얗고 작은 너무나 아름다운 눈의 결정으로 변해갑니다.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곁에

천천히 보는 세상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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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바탕의 꿈 언젠가 목숨의 위협을 받는 위험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 이젠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의 사물들이 슬로우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이면서 지난날의 삶의 모습들이 슬라이드쇼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음직한 이런 경험은 내가 사진을 하고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살면서 보고 겪는 많은 경험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잊어버린 후에도 우리의 머리속 어느 한편에서 차곡차곡 재여져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무의식속에서 현재의 우리들의 눈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것이다. 사진이라는 거울 내게 있어서 사진은 거울과 같다. 렌즈를 통해 사물의 상을 카메라에 잡는 것이라지만 사실은 렌즈뒤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찍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사진 속에서 언제나 나의 모습이 보려한다. 그러해서 거울과 같다고 한다. 나는 사진이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의 내 모습뿐만 아니라 과거의 내 모습,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이 사진들에서처럼 미래의 내가 회상하는 현재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많은 경험과 세월을 보내고 인생의 황혼에 들어서서 할아버지가 된 내가 지금의 나를 회상본다면 그 모습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자랑스러울지도.. 혹은 한심해 보일지도 또는 덛없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진은 그런 회상속의 내 모습을 그려본 것이다. 거친 세파속

Now 여행 III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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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h Jones] Seven Years 여행 III (모스크바) 러시아에 도착하니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싯구절이 떠올랐다. 왜 삶이 나를 속여도 슬퍼하지 말아야 할까? 지난 추억은 결국 소중해진다는 푸슈킨의 결론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사람은 과거에 사는 걸까? 아니면 미래에 사는 걸까? 현재라는 시간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 붉은 광장 ==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 것은 크라스나야 라는 러시아의 고어에서 유래한다. 원래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크라스나야 라는 말은 지금은 붉은 광장 이라는 말로 의미가 통하고 있지만 본래는 아름다운 광장 이라는 의미였다.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며 15세기경만 해도 흙벽으로 둘러싸인 키타이 고로트라는 지구에 수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어 노점을 벌이던 곳이다. 붉은 광장의 퇴적토는 4M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에 의해 1세기에 1M 비율로 토사가 쌓인다고 한다. 이 사이 붉은 광장을 밟고 지나간 사람은 얼마나 많은런지... 위기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타타르인의 침입을 막으려고 사람들이 달려온 것은 이 곳이 붉은 광장이라 불리기 한 세기 앞의 일이다. 미닌과 보자르스키가 폴란드를 격퇴한 것은 광장에 토사가 쌓이기 시작하던 무렵이고 농민 반란의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