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내 책상위의 천사 중에서)

하늘 No.28 [문학] 4469
초대시 (내 책상위의 천사 중에서) Photo-Image

part23. 엽서(葉書) (초대시)

- 최 돈선 -



누가 나를 사랑하나 ?

한 편의 영화(映畵)처럼 강(江)이 떠나고

포플러가 자라고 바람과 함께 흐린 날이 왔다.

나는 부끄러워

조그만 목소리로 미어지듯

음악(音樂)을 욕했다.

비록 조용한 배반(背反)이었으나

사랑하는 진정한 그들이 죽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LAMP 와 그리운 바람이

인생(人生)을 덮고

죽은 친구의 묵은 엽서(葉書)에 긋는

자욱한 빗줄기

아직은 한 줄기 시(詩)를 사랑하고

노래처럼 불이 켜지고

바람과 함께 흐린 날이 왔다.



part24. 자화상(自畵像) (초대시)

- 윤 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part1.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초대시)

문 은희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百)이라면

그 중 하나는

나 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 이라면

그 중 하나는

나 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 뿐 이라도

그는 바로 나 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까닭일 겁니다.



part15. 겨울꽃 (초대시)

문 은희



지나치리 만큼

사랑을 안고 있는 당신 앞에선

나는 왕후(王后)의 격(格)을 갖고 있으면서도

뒷문을 열고 우는 비련의 女人이 됩니다.

지나치리 만큼

사랑을 안고 있는 당신 앞에선

난 더 이상 기쁠 수 없는 만큼

그만큼 슬플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사랑이란 말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1993/02/14 02:34:14



part16. 편지 (便紙) (초대시)

김 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나는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正直)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에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玲瓏)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始作)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便紙)를 쓴다.

한 귀절을 쓰면 한 귀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便紙)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part17. 序詩 (초대시)

김 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일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이

더군다나 수치일 수는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能力)이

우리에게 있어서

行 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 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는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도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part18. 공존의 이유 (초대시)

김 남조


우리는 서로

우리로 인해 서럽지 않은 날까지

여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고 가는 억만 세월

잎새에 이는

덧 없는 한 점 계절풍(季節風)입니다.

많은 날들을

소리 없는 변명에 시달려도

마냥

마음은 부시시 잠 깨는

새벽 하늘이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믿음

돌아서고픈 생활일지라도

해 저무는

산을 보며

아직은 어림없는 인내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가 되는 날을 위해

눈물 없는 마음으로

오늘을 마셔야 합니다.



part19. 사랑굿 6x6=36 (초대시)

김 초혜


구름에 가려도 제 빛인 하늘

먼지에 흐려도 맑은 우리

서로 비워 환한 우리

시들지 않게 두자.

그르다 해서 치우지 말고

옳다 해서 애쓰지 않으며

안에 있는 울음과

밖에 있는 웃음이

다르다 해서 조바심도 말며

이쪽이 있어야

저쪽이 보이듯

멀리 있어도

종내 못 있는

우리가 되자.



part20. 강 (江) (초대시)

김 준태


애인(愛人)이여

구름을 이고 오는

여름날의 멀고 먼 길을 아는가??

얼굴을 나중에 오게 하고

마음을

먼저 보내는...

멀리서

흔들리는

가슴을 아는가!!!



part21. 어느 신문 자락에서


마지막 장면(場面)이 끝나고

음악(音樂)이 깔리며 긴 자막(字幕)이 솟아오를 때

이미 영화관(映畵館)안에 불이 켜지고 여기저기

성급한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始作)했을 때

차마 그냥 일어설 수 없어 자리에 조금 더 앉아 있어야 하는

그런 영화(映畵)가 있다.

책 중에서도 가끔 그런 책이 있다.

책 속에 사랑이, 그 감동과 여운(餘韻)이,

영혼(靈魂)의 한 자락을 비끄러맨 듯 남아 있는 책.

그리고

오래도록 우리를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는 책

하필이면 가슴 아픈 첫 사랑의 기억(記憶)을

자꾸 되뇌이게 하는 책

아직도 첫 사랑은 우리에게 기쁨이면서 슬픔인 것을

누군들 첫 사랑이 아프지 않으랴.

맨 처음 사랑은 설래임으로 온다.

폭풍(暴風)처럼,

음악(音樂)처럼,

때로는 커피(COFFEE)향기(香氣)처럼,

그리고 미열(微熱) 처럼,

기쁨이면서 슬픔인 채로.



part22. Evan의 첫번째와 두번째 사랑이야기中에서 (초대시)

Evan



그대가

어둡고 괴로운 밤을 다 바쳐

끝 없는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신열이 가시지 않는 이마로 창문을 열었을 때

그대는 보았을 것이다.

온 세상을 가득 덮은 장막을!

하늘의 편지는 그처럼 깨끗하다.


그대는

그대의 편지에서 온갖 군두더기 말들을

지우고,

지우고 나서

마침내

한 장의 백지만을 남길 것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넘쳐 나는,

넘쳐 나는 눈부심!

사랑이 이와 같으니

찬란한 밤을 다 바쳐

쓴 편지를

하나 둘씩 지우며

그대는

또 하나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편지는...


part18. 젊음은.. (초대시)

문 은희



젊음은 해 보려는 의지(意志).

가시밭 길을 일구는 맨 손.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술잔이 없어도 건배(乾杯)를 외치고

집을 벗어 던진 달팽이로 살기.


젊음은 비상(飛上)의 날개 짓.

폭풍(暴風) 치는 야산(野山)의 패랭이 꽃.


나의 일 앞에서 세상(世上)을 탓하지 않으며

무책임(無責任)한   방황(彷徨)으로 나타내지 않는

시간(時間)을 쫓아 떠난 사냥꾼으로 살기.


젊음은 태양(太陽)을 향한 정열(情熱).


소유(所有)하지 못함 또한 역시 내 것임을

외로움이 내게만 구형(求刑)된 형벌(刑罰)이 아닌

부활(復活)을 위한 자살(自殺)임을 알기.


대가(對價)를 치르는 침묵(沈默)이 변명(辨明)보다도

고통(苦痛) 받는 인생(人生)이 안일(安逸)보다도

값짐을 알게 되는 가을날에

젊음은 제 빛깔을 하고 선 고목(古木)앞에서

더 높이 날아가려는 바람과 갖는 언약(言約).


젊어서 팔이 짧은 우린

모여서 하나가 되는

오선(五線)을 장악한 음표(音標)로 살기.




part27. 방랑 (초대시)

헤르만헤세 (H.HESSE)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내 밤이 옵니다.

밤이 되면 파란 들 위에

서늘한 달이 살며시 웃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 손을 잡고 쉽시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내 때가 옵니다.

때가 오면 쉽시다.

우리들의 작은 십자가 둘이

밝은 길가에 서로 서 있을 겁니다.

비가 오면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갈 겁니다.



part28. 아버지 (초대시)

TV 드라마 게임 {아버지} 중에서



바쁜 사람들이나

굳센 사람들이나

바람에 날리는 사람들이나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의 술잔 속에는

눈물이 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중학교때였는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라는 소제의 드라마게임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성우가 읽었던 시였는데 너무나 강렬한 인상이어서 그 다음날 수업시간에 기억을

되살리며 적었던 글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시집 [절대 고독] 1970)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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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에 마지막으로 자막으로 깔리며 지난간 시를 다시 기억해서 적을려하다보니 창작아닌 창작이 되어 버린 글이다. 위의 김현승님의 시를 성우의 목소리로 들으며 느꼈던 감상에 가까운 글이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part29. 아버지와 나 (초대시)

신해철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난 창공을 나르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써의 생의 시작은 내 턱밑에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 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 그들은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들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家長)이 된다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 갈 것이다.



part30. 서울의 예수 (초대시)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 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https://SkyMoon.info/a/HeismeNote/28  

시간이 그립다. 항상 곁에 있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늘-잊힌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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