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 우포 늪에서

하늘 No.221 [문학] 4611
[정숙] 우포 늪에서 Photo-Image
우포 늪에서 - 정숙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거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제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불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까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세월들이, 오바사바 썩은 진흙 구디에서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 위기의 꽃, 문학수첩, 2002 -

연작: 산과 물
https://heisme.skymoon.info/article/PhotoEssay/256

https://SkyMoon.info/a/HeismeNote/221  

돌아보면 남아 있는 것은 여린 기억들이었습니다. 잊혀진 기억조차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있었습니다 [하늘-삶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