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욕이관기묘 (常無欲 以觀其妙) - 도덕경

하늘 No.213 [문학] 4236
상무욕이관기묘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
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도덕경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언제나 무욕하면 그 묘함을 보고 유욕하면 그 往來를 본다.

도와 명/ 무명과 유명/ 무욕과 유욕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도만 있었고 다음에 규정과 분별이 생겼고 그 다음 지향적 운동이 발동된다는 순서다.

常無欲以觀其妙: 해석되어야 할 부분은 ‘무욕’과 ‘묘’다. 이 욕은 일반적인 욕심이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라고 할 때는 慾을 쓴다. 차이는 마음 심자다. 그렇다면 이 욕은 ‘하고자 한다’로 풀이되는 바 그 하고자 함은 단지 인간의 의욕을 말함이 아니고 자연 전체의 방향이 정해진 운동성으로 보아야 한다. 즉 아직 운동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묘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묘함은 앞선 문장들의 비상도=시=묘=무극이다. 논리적으로 이런 등가가 성립한다.
묘자는 파자로 보자면 어린 소녀다. 어린 소녀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직 생산력이 없는 여자라는 말이다. 만물지모의 직전 단계를 말한다. 생산의 잠재력만 가지고 준비된 상태. 그러니 운동이 시작된 음양 이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常有欲以觀其?: 그렇다면 유욕은 자연히 운동이 시작된 이후를 뜻한다. 일단 운동이 시작되고 나면 어떤 ‘방향성’이 생긴다.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목-화-토-금-수의 상생 방향에 비유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적 개념으로는 전자-광자-중력미자-중력자-스칼라 중간자로 이어지는 흐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주 간 모든 운동은 순환 대칭 운동이다. 물론 즉 ‘오고 감’이다. 그래서 왕래를 의미하는 요자가 쓰였다.
달리 말하자면 이렇다. ‘태초에는 떨림만 있고 방향이 없다가 일단 움직이면 순환 운동이 일어난다’ 명백하게 우주 형성 과정을 말하고 있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시중의 모든 해석은 그런 관점에 비춘 바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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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無慾 以觀其根
常有慾 以觀其表
욕심을 비우면 본질이 보이고
욕심에 빠지면 껍질만 보인다

常有慾 以觀其花
常無慾 以觀其根
욕심에 빠지면 꽃잎만 보이고
욕심을 비우니 뿌리가 보인다

https://SkyMoon.info/a/HeismeNote/213  

고개를 한껏 숙이고 나면 나의 발끝에는 내 인생이 거울처럼 비쳐져 있다. [하늘-나의 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