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삼촌.Mon Oncle(Jacques Tati).1958.1080p
자막 :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324104
나의삼촌.Mon Oncle(Jacques Tati).1958.1080p
영상 길이 : 1:50:28
자크타티 영화를 찾아 보는 중입니다.
영화 제목은 나의 삼촌, 나의 아저씨 등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내용상으로 정확하게는 나의 외삼촌 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영화의 블루레이판 자막이 시네스트에 Criterion 버전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원 자막 : Mon.oncle.1958.1080p.x264.AAC.Criterion ( http://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922637 )
이 영상도 블루레이판이지만 위의 자막과 씽크뿐만 아니라 편집도 달라서 싱크 조절이 아니라 거의 재배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커트 편집된 화면에 포함된 원자막의 내용도 삭제 되었고 반대로 추가된 영상에는 약간 첨가되거나 혹은 크게 중요치 않은 부분은 빈 채로 두었습니다.
빈 곳이 있어서 자막 완성도는 낮지만 감상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원자막 내용을 재배치한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래의 내용을 참조하세요
- Heisme
플라스틱 회사의 사장인 무슈 아르펠은 아내와 아들 제라르, 다크스훈트 애완견과 함께 최첨단 기기들로 가득 찬 현대식 건물에 삽니다. 하지만 밍밍한 철근 콘트리트 건물로 가득찬 아르펠씨네 근처에서 몇 블록만 더 내려가면 아직도 구식 옛 건물들이 남아있고 그 중 가장 낡아빠진 건물 꼭대기에는 마담 아르펠의 동생인 무슈 윌로가 직장도, 일도 없이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생각이 실용적인 무슈 아르펠은 무슈 윌로의 백수 생활을 참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슈 윌로는 무슈 아르펠이 주선해주는 일자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버텨내본 적 없죠. 어떻게든 그를 회사에 밀어넣으면 꼭 엉뚱한 오해와 사고가 생겨 그를 밀어내니까요. 이웃집 노처녀와 동생을 짝지어주려는 마담 아르펠의 계획도 비슷한 이유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아르펠 가족이 무슈 윌로와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두 세계가 충돌하고 있는 걸 봅니다. 매정한 현대 문화의 산물들이 지배하는 기계적이고 건조한 세계와 무슈 윌로로 대표되는 소박하고 친근하며 아늑한 세계가 전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물론 이 전투의 병사인 무슈 윌로에겐 정말로 전쟁을 벌이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무슈 윌로는 악의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조카 제라르를 사랑하고 누나 부부 역시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독특하게 쌓아올린 그 나름대로의 생활 방식은 결코 아르펠 부부의 세계와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의도는 선의로 가득 차 있지만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되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아르펠 부부의 세계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심술궂은 영감탱이 르 코르뷔제와 그의 패거리들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영원히 가두고 싶어했던 초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결코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거대한 눈처럼 생긴 동그란 창, 파란 물을 토해내는 죽은 생선 모양의 분수, 극도로 디자인 위주라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구들은 오히려 안에 사는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아르펠 부부의 집에 살거나 들르는 사람들은 차고 안에 갇히고 자동식 찬장과 싸우고 분수세례를 받으며 음흉한 집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심지어 편하라고 있는 인터폰도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분수를 켜고 자동문을 열어대는 마담 아르펠의 모습을 보세요. 도대체 '편함'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곳은 무슈 윌로의 집입니다. 너무나도 불편하게 지어져서 오히려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이 엉뚱한 공간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무슈 윌로가 꼬불꼬불 얽힌 미로를 통해 자기 방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는 장면에서는요. 어떻게 보면 불편한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무슈 윌로의 집은 불편을 편리라고 속이면서 사는 사람들을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집과 사람은 살아가면서 서로를 익히고 또 서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갑니다(무슈 윌로가 창문 유리의 반사를 이용해 아래 방의 카나리아를 울게 하는 장면을 보세요).
무슈 윌로는 같은 방식을 아르펠 부부의 현대적 삶에도 적용시킵니다. 집의 노예가 된 아르펠 부부와는 달리 그는 끊임없이 대화와 타협을 시도합니다. 나무통 같은 불편한 소파를 옆으로 눕혀 편안한 흔들의자로 만드는 것처럼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 결과는 카오스입니다. 아르펠 부부의 세계는 결코 이런 일대일의 대화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이들의 대결은 타티 풍의 엉뚱한 카오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설교조가 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삼촌]은 그 어느 쪽으로도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건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와는 달리, 영화가 그런 직설적인 설교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이 영화의 눈높이는 아들 제라르와 강아지 닥스의 눈 높이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무슈 윌로 역시 같은 수준의 남자죠. 일단의 악동들이 휘파람을 불며 길가는 사람들을 가로등에 박는 장난을 치는 장면, 강아지 닥스가 아르펠 부부의 집에서 빠져나와 동네 강아지들과 빈터에서 노는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선언문입니다. 타티는 매섭게 기계화된 현대 문명을 꾸짖는 대신 짓궂은 악동들처럼 그들에게 장난감을 집어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장난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맘 속에도 동네 꼬마와 강아지들이 하나씩 숨어 있기 때문이겠죠. (01/05/17)
나의 삼촌 Mon oncle (1958) * * * *
감독
자크 타티 Jacques Tati
주연 자크 타티....윌로씨
Jacques Tati....Monsieur Hulot
아드리안느 세르방티....아르펠 부인
Adrienne Servantie....Madame Arpel
장-피에르 졸라....아르펠씨
Jean-Pierre Zola....Monsieur Arpel
알랭 베코르....제라르 아르펠
Alain Becourt....Gerald Arpel
아델라이데 다니엘리....피카르 부인
Adelaide Danielli....Madame Pichard
루시앵 프레지스....피카르씨
Lucien Fregis....Monsieur Pichard
이본느 아르노....조르제트
Yvonne Arnaud....Georgette
도미니크 마리....이웃
Dominique Marie....Neighbor
베티 슈나이더....베티
Betty Schneider....Betty
http://www.djuna.kr/movies/mon_oncle.html
나의 삼촌
Mon oncle (My Uncle)
1958 프랑스,이탈리아
코미디 상영시간 : 110분
감독 : 자크 타티
출연 : 자크 타티(윌로) 장-피에르 졸라(아펠)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작품. 전자동 시스템의 만능 주택에 살고 있는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을 믿으면서 산다. 그들은 윌로씨의 누이 부부이다.
윌로씨는 조카를 학교에서 집까지 데려다주느라 자신이 거주하는 낡지만 안락한 지역과 누이 부부가 사는 초현대식 디자인의 저택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윌로는 누이 남편인 사장의 공장에서 일도 해보지만 자동화된 기계와 인간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그는 엉뚱한 사고를 칠 뿐이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아카데미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7466
자크 타티Jacques Tati는 코미디 장르의 대단히 철학적인, 그러나 솜씨는 서투른 수선공이다. 그는 작품들을 너무나 꼼꼼하고 세심하게 챙기기 때문에, 그의 영화들은 뜻밖의 사실의 드러남과 자연스러운 즐거움으로 점철된다. <나의 삼촌>의 초입에 등장하는 숏을, 그러니까 타티의 캐릭터인 뷜로가 옥상의 방에서 살고 있는 빌딩의 외면을 카메라가 훑는 장면을 잘 생각해보라. 이 건물은 언뜻 보면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윌로는 그중 한 건물의 1층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그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의 몸이나 다리나 머리나 구두가 창문과 복도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면서 이 두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침내 그가 옥상에 올라갔을 때, 시야에서 사라진 그의 모습은 우리가 예상했던 곳이 아닌, 스크린 반대쪽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영화에는 이런 장면들이 더 많다. 그가 창문을 열면 카나리아 우는 소리가 들린다. 열린 창문의 각도를 조금만 조정하면 새의 모랫소리가 그친다. 다시 창문을 열면 노랫소리가 들린다. 창문에 반사된 햇빛이 이웃집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에 비치기 때문이라눈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창문 자체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웃들에게 새의 노랫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유리창의 위치를 조정한다. 나중에, 시각적으로 웃음을 주는 또 다른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가 다시금 빌딩 밖에서 바라볼 때, 네글리제를 입은 여자가 윌로가 내려오기 시작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이 복도에서 서로 지나칠 때, 그는 걸음을 멈추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구두뿐이다. 구두는 우리를 향하면서, 그가 정중하게 여성에게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장면들으 짐 캐리가 질투할 만한 동작 개그가 아니다. 이들은 그 안에 담긴 조용한 어리벙벙함으로 우리를 웃긴다. 또한 실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타티가 우연히도 값진 것들을 발견했다는식의 음모이론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겉만 번지르르한 물질주의로 가득한 1950년대의 별나 장치들 속에 윌로를 배치한 <나의 삼촌>(1958)은 특히 그렇다. 타티의 위대한 초기작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1953)에서, 우리는 바닷가로 휴가를 온 윌로가 너무나 선한 의도를 갖고도, 사회적인 찬사를 연달아 일으키면서 자신의 갈 길을 비틀거리며 가느 모습을 보았다. 이제 그는 도시에 있다. 이 도시는 사실상 2개의 도시다. 하나는 작은 술집과 거리청소부와 고물 마차가 있으며 흔들거리는 빌딩들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떠돌이 개들과 청과물시장이 있는 오래된 프랑스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자동화된 주택과 생기 없는 공장과 보기에 고약한 패션들로 이뤄진 현대적인 도시다.
윌로는 항상 똑같다. <플레이타임Playtime>(1967)과 <트래픽Trafic>(1971)에도 등자하는 타티의 캐릭터는 채플린의 캐릭터만큼이나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는 갈색 펠트 중절모, 황갈색 레인코트, 나비 넥타이, 너무 짧은 바지, 줄무늬 양말 차림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가 기다란 파이프를 들고 있지 않은 장면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급할 때나 혼란스러울 때에는 파이프를 발뒤꿈치에다 대고 신경질적으로 툭툭 친다. 그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나의 삼촌>은 절반 정도는 무성영화로, 대사를 할 때 나는 소리는 도서관에서 예상치 못하게 듣게 되는 소음처럼 들린다. 명랑하고 간결한 곡조로 되풀이되는 음악은 관객들이 광대들의 등장을 기다리는 동안 듣는 서커스음악과 비슷하다.
윌로는 <윌로씨의 휴가>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나의 삼촌>의 윌로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인물이자 실직자이고, 현대 세계 때문에 어리벙벙해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그의 누나인 마담 아르펠(아드리안느 세르반티에)은 자신이 동생을 도울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녀는 남편인 무슈 아르펠(장 피에르 졸라)과 어린 아들 제라르(알랭 베쿠)와 함께 미래 스타일의 기괴한 건물에서 살면서, 영화 대부분의 시간을 차가운 신세계를 탐구하며 보낸다.
앙리 슈미트가 담당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걸작인 아르펠 부부의 집에는 자동문과 창문, 주방용품들이 있고, 주둥이로 물을 뿜어내는 물고기로 만든 흉측한 알루미늄 분수도 있다. 이 물고기는 집안에 손님이 있을 때만 작동되고, 가족이나 잡상인, 친척들이 있을 때는 꺼져있다. 위층에 있는 2개의 커다란 창문들은 사람의 눈처럼 보인다. 뒤에서 조명을 받은 아르펠 부부의 머리가 눈동자 구실을 할 때는 특히 그렇다. 정원에는 대문까지 꾸불꾸불한 통로가 나 있는데, 통로의 구조때문에 서로를 뜨겁게 반기며 다가서는 두 여자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통로를 걸어가게끔 만드는 장난기 넘치는 숏이 가능해진다. 마담 아르펠이 동생이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웃들을 만나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골치 아픈 부르주아지의 거북함으로 점철된 가든파티가 열린다. 파티도중에 의자들과 테이블들은 꼴사남게 이리저리로 옮겨지고,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은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물고기 분수로 연결된 지하 튜브에는 구멍이 난다.
이런 일들이 윌로의 주변에서 벌어진다. 플라스틱 호스 공장의 임원인 무슈아르펠은 처남에게 일자리를 구해주지만, 윌로의 취직은 인사담당자의 책상에 찍힌 의문의 발자국과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닮은 호스의 생산을 포함한 온갖 난처한 사건들로 이어진다. 윌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조카 제라르인것 같다. 제라르는 현대적인 주택에서 사는 것을 따분하게 여기며, 장난꾸러기 친구들과 더불어 이것저곳을 뛰어다니기 위해 집에서 탈출한다. 격자무늬 오버코트를 입은 닥스훈트종인 잡안의 개도 지역의 집 없는 개들과 뛰어다니기 위해 집안을 벗어난다.
<나의 삼촌>은 윌로와 같은 지역에 사는 캐릭터들을 상당후 소개한다. 그중에는 빗자루를 사용할 생각은 있지만 결코 사용은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리의 청소부도 있고, 타이어가 납작해져서 트럭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저울이 맞지않게 된 농산물 장사꾼도 있다. 건물관리인의 딸 베티(베티 슈나이더)와 관련한 따듯하고 예민한 서브플롯이 있다. 베티는 윌로에서 사탕을 주면서 잠깐이나마 윌로에게 시시덕거린다. 달콤씁쓸한 마지작 장면에서, 다 자란듯 보이는 그녀는 윌로에게 로맨틱한 제스처를 보여주고파 하는 기색을 보인다. 슬프게도, 일을 진행하기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개들의 조연 연기도 있다. 개들은 서로 서로 자기들 볼일을 보느라 분주하다. 개들은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는다. 개들은 그냥 영화에 등장해서는 영화의 배경을 검사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한다. 타티가 이 개들을 동물수용소에서 찾아냈으며, 개들을 조련하는 대신 그냥 관찰하면서 개들이 뛰어놀게끔 놔뒀다는 것을 나는 격조높은 웹 사이트 Tativille.com에서 알게 됐다. "촬영이 끝났을 때 우리는 개들을 처분해야 했다"라고 타티는 썼다. 동물수용소로 되돌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던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개들을 무비스타로 묘사하는 광고를 신문에 냈거, 개들은 모두 좋은 집을 찾아냈다. 이 가슴 훈훈한 이야기는 타이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자크 타티(1909~1982)는 장편영화 6편과 몇 편의 단편과 TV쇼만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비주얼 코미디의 거장들 중에서도 걸출한 무성영화의 광대로 꼽힌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정확하게 구성된 숏과 세트, 핵션과 개그가 그토록 인상적인 것은 그가 차분한 영역 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윌로는 굶주림에 시달리지도, 시계의 앞면에 매달리지도, 사랑에 빠지지도,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인생에서 멀리 떨어져서, 문명의 장애물들을 뛰어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수행하면서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빈둥거린다.
차르가 프랑수로 파견한 대사의 손자였던 타티는 연예계에 투신하는 것으로 아버지가 하던 표구업의 계승을 피했다. 인기 좋은 빌보드 연기자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우편집배원에 대한 단편을 만들었고, 다음에는 역시 집배원에 대한 영화인 <축제일Jour de Fete>을 만들었다. 윌로를 세상에 소개한 <윌로씨의 휴가>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나의 삼촌>은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제작비 조달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차기작 3편 때문에 빚더미에 올랐는데, 그 작품들을 이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은 인간적인 주인공이 비인간적인 사회와 대면하는 방식에서 그가 더욱 대담하고 급진적으로 변모해갔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다.
나는 윌로씨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그가 어떤 해악도 바라지 않고, 어떤 해악도 일으키지 않으며, (가능한 경우에는 언제든) 어떤 해악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위법 행위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버릇없는 사람의 면전에서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흥미롭다는 듯 보이려고 노력하며, 길 밖에 머무른다. 물고기가 계속 물을 뿜어낼 수 있게끔 잔디밭에서 물이 새는 곳을 발로 밟는 식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침마다 길을 나서서 이리저리 걸으며 모자를 툭툭 치고 파이프를 탁탁 치며 길에서 만나는 재미난 것들을 감사히 여기는 것이다. 집주인의 딸에게 작별을 고할 때처럼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플 경우에도, 그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끔 만들지 않는다.
"내 동생한테 필요한 것은 목표예요." 마담 아르펠이 선언한다. 그러나 윌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는 홀로 남은 상태에서 딱히 정해진 목적지나 행선지 없이, 정처 없이 헤매며 세상을 감상하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역이 아니다. 영화에는 가치다." 나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전혀 몰라었다. 윌로 씨가 그 뜻을 나한테 보여주기 전까지는. 즐거움은 여행길에 있고, 슬픔은 목적지에 있다.
- Roger Ebert [The Great Movies 2]
http://egloos.zum.com/softdrink/v/114386
예고편 : https://youtu.be/NHJcwMrqnJo
나의삼촌.Mon Oncle(Jacques Tati).1958.1080p
영상 길이 : 1:50:28
자크타티 영화를 찾아 보는 중입니다.
영화 제목은 나의 삼촌, 나의 아저씨 등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내용상으로 정확하게는 나의 외삼촌 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영화의 블루레이판 자막이 시네스트에 Criterion 버전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원 자막 : Mon.oncle.1958.1080p.x264.AAC.Criterion ( http://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922637 )
이 영상도 블루레이판이지만 위의 자막과 씽크뿐만 아니라 편집도 달라서 싱크 조절이 아니라 거의 재배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커트 편집된 화면에 포함된 원자막의 내용도 삭제 되었고 반대로 추가된 영상에는 약간 첨가되거나 혹은 크게 중요치 않은 부분은 빈 채로 두었습니다.
빈 곳이 있어서 자막 완성도는 낮지만 감상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원자막 내용을 재배치한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래의 내용을 참조하세요
- Heisme
플라스틱 회사의 사장인 무슈 아르펠은 아내와 아들 제라르, 다크스훈트 애완견과 함께 최첨단 기기들로 가득 찬 현대식 건물에 삽니다. 하지만 밍밍한 철근 콘트리트 건물로 가득찬 아르펠씨네 근처에서 몇 블록만 더 내려가면 아직도 구식 옛 건물들이 남아있고 그 중 가장 낡아빠진 건물 꼭대기에는 마담 아르펠의 동생인 무슈 윌로가 직장도, 일도 없이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생각이 실용적인 무슈 아르펠은 무슈 윌로의 백수 생활을 참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슈 윌로는 무슈 아르펠이 주선해주는 일자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버텨내본 적 없죠. 어떻게든 그를 회사에 밀어넣으면 꼭 엉뚱한 오해와 사고가 생겨 그를 밀어내니까요. 이웃집 노처녀와 동생을 짝지어주려는 마담 아르펠의 계획도 비슷한 이유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아르펠 가족이 무슈 윌로와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두 세계가 충돌하고 있는 걸 봅니다. 매정한 현대 문화의 산물들이 지배하는 기계적이고 건조한 세계와 무슈 윌로로 대표되는 소박하고 친근하며 아늑한 세계가 전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물론 이 전투의 병사인 무슈 윌로에겐 정말로 전쟁을 벌이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무슈 윌로는 악의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조카 제라르를 사랑하고 누나 부부 역시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독특하게 쌓아올린 그 나름대로의 생활 방식은 결코 아르펠 부부의 세계와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의도는 선의로 가득 차 있지만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되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아르펠 부부의 세계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심술궂은 영감탱이 르 코르뷔제와 그의 패거리들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영원히 가두고 싶어했던 초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결코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거대한 눈처럼 생긴 동그란 창, 파란 물을 토해내는 죽은 생선 모양의 분수, 극도로 디자인 위주라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구들은 오히려 안에 사는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아르펠 부부의 집에 살거나 들르는 사람들은 차고 안에 갇히고 자동식 찬장과 싸우고 분수세례를 받으며 음흉한 집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심지어 편하라고 있는 인터폰도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분수를 켜고 자동문을 열어대는 마담 아르펠의 모습을 보세요. 도대체 '편함'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곳은 무슈 윌로의 집입니다. 너무나도 불편하게 지어져서 오히려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이 엉뚱한 공간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무슈 윌로가 꼬불꼬불 얽힌 미로를 통해 자기 방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는 장면에서는요. 어떻게 보면 불편한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무슈 윌로의 집은 불편을 편리라고 속이면서 사는 사람들을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집과 사람은 살아가면서 서로를 익히고 또 서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갑니다(무슈 윌로가 창문 유리의 반사를 이용해 아래 방의 카나리아를 울게 하는 장면을 보세요).
무슈 윌로는 같은 방식을 아르펠 부부의 현대적 삶에도 적용시킵니다. 집의 노예가 된 아르펠 부부와는 달리 그는 끊임없이 대화와 타협을 시도합니다. 나무통 같은 불편한 소파를 옆으로 눕혀 편안한 흔들의자로 만드는 것처럼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 결과는 카오스입니다. 아르펠 부부의 세계는 결코 이런 일대일의 대화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이들의 대결은 타티 풍의 엉뚱한 카오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설교조가 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삼촌]은 그 어느 쪽으로도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건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와는 달리, 영화가 그런 직설적인 설교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이 영화의 눈높이는 아들 제라르와 강아지 닥스의 눈 높이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무슈 윌로 역시 같은 수준의 남자죠. 일단의 악동들이 휘파람을 불며 길가는 사람들을 가로등에 박는 장난을 치는 장면, 강아지 닥스가 아르펠 부부의 집에서 빠져나와 동네 강아지들과 빈터에서 노는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선언문입니다. 타티는 매섭게 기계화된 현대 문명을 꾸짖는 대신 짓궂은 악동들처럼 그들에게 장난감을 집어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장난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맘 속에도 동네 꼬마와 강아지들이 하나씩 숨어 있기 때문이겠죠. (01/05/17)
나의 삼촌 Mon oncle (1958) * * * *
감독
자크 타티 Jacques Tati
주연 자크 타티....윌로씨
Jacques Tati....Monsieur Hulot
아드리안느 세르방티....아르펠 부인
Adrienne Servantie....Madame Arpel
장-피에르 졸라....아르펠씨
Jean-Pierre Zola....Monsieur Arpel
알랭 베코르....제라르 아르펠
Alain Becourt....Gerald Arpel
아델라이데 다니엘리....피카르 부인
Adelaide Danielli....Madame Pichard
루시앵 프레지스....피카르씨
Lucien Fregis....Monsieur Pichard
이본느 아르노....조르제트
Yvonne Arnaud....Georgette
도미니크 마리....이웃
Dominique Marie....Neighbor
베티 슈나이더....베티
Betty Schneider....Betty
http://www.djuna.kr/movies/mon_oncle.html
나의 삼촌
Mon oncle (My Uncle)
1958 프랑스,이탈리아
코미디 상영시간 : 110분
감독 : 자크 타티
출연 : 자크 타티(윌로) 장-피에르 졸라(아펠)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작품. 전자동 시스템의 만능 주택에 살고 있는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을 믿으면서 산다. 그들은 윌로씨의 누이 부부이다.
윌로씨는 조카를 학교에서 집까지 데려다주느라 자신이 거주하는 낡지만 안락한 지역과 누이 부부가 사는 초현대식 디자인의 저택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윌로는 누이 남편인 사장의 공장에서 일도 해보지만 자동화된 기계와 인간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그는 엉뚱한 사고를 칠 뿐이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아카데미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7466
자크 타티Jacques Tati는 코미디 장르의 대단히 철학적인, 그러나 솜씨는 서투른 수선공이다. 그는 작품들을 너무나 꼼꼼하고 세심하게 챙기기 때문에, 그의 영화들은 뜻밖의 사실의 드러남과 자연스러운 즐거움으로 점철된다. <나의 삼촌>의 초입에 등장하는 숏을, 그러니까 타티의 캐릭터인 뷜로가 옥상의 방에서 살고 있는 빌딩의 외면을 카메라가 훑는 장면을 잘 생각해보라. 이 건물은 언뜻 보면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윌로는 그중 한 건물의 1층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그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의 몸이나 다리나 머리나 구두가 창문과 복도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면서 이 두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침내 그가 옥상에 올라갔을 때, 시야에서 사라진 그의 모습은 우리가 예상했던 곳이 아닌, 스크린 반대쪽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영화에는 이런 장면들이 더 많다. 그가 창문을 열면 카나리아 우는 소리가 들린다. 열린 창문의 각도를 조금만 조정하면 새의 모랫소리가 그친다. 다시 창문을 열면 노랫소리가 들린다. 창문에 반사된 햇빛이 이웃집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에 비치기 때문이라눈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창문 자체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웃들에게 새의 노랫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유리창의 위치를 조정한다. 나중에, 시각적으로 웃음을 주는 또 다른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가 다시금 빌딩 밖에서 바라볼 때, 네글리제를 입은 여자가 윌로가 내려오기 시작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이 복도에서 서로 지나칠 때, 그는 걸음을 멈추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구두뿐이다. 구두는 우리를 향하면서, 그가 정중하게 여성에게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장면들으 짐 캐리가 질투할 만한 동작 개그가 아니다. 이들은 그 안에 담긴 조용한 어리벙벙함으로 우리를 웃긴다. 또한 실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타티가 우연히도 값진 것들을 발견했다는식의 음모이론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겉만 번지르르한 물질주의로 가득한 1950년대의 별나 장치들 속에 윌로를 배치한 <나의 삼촌>(1958)은 특히 그렇다. 타티의 위대한 초기작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1953)에서, 우리는 바닷가로 휴가를 온 윌로가 너무나 선한 의도를 갖고도, 사회적인 찬사를 연달아 일으키면서 자신의 갈 길을 비틀거리며 가느 모습을 보았다. 이제 그는 도시에 있다. 이 도시는 사실상 2개의 도시다. 하나는 작은 술집과 거리청소부와 고물 마차가 있으며 흔들거리는 빌딩들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떠돌이 개들과 청과물시장이 있는 오래된 프랑스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자동화된 주택과 생기 없는 공장과 보기에 고약한 패션들로 이뤄진 현대적인 도시다.
윌로는 항상 똑같다. <플레이타임Playtime>(1967)과 <트래픽Trafic>(1971)에도 등자하는 타티의 캐릭터는 채플린의 캐릭터만큼이나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는 갈색 펠트 중절모, 황갈색 레인코트, 나비 넥타이, 너무 짧은 바지, 줄무늬 양말 차림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가 기다란 파이프를 들고 있지 않은 장면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급할 때나 혼란스러울 때에는 파이프를 발뒤꿈치에다 대고 신경질적으로 툭툭 친다. 그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나의 삼촌>은 절반 정도는 무성영화로, 대사를 할 때 나는 소리는 도서관에서 예상치 못하게 듣게 되는 소음처럼 들린다. 명랑하고 간결한 곡조로 되풀이되는 음악은 관객들이 광대들의 등장을 기다리는 동안 듣는 서커스음악과 비슷하다.
윌로는 <윌로씨의 휴가>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나의 삼촌>의 윌로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인물이자 실직자이고, 현대 세계 때문에 어리벙벙해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그의 누나인 마담 아르펠(아드리안느 세르반티에)은 자신이 동생을 도울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녀는 남편인 무슈 아르펠(장 피에르 졸라)과 어린 아들 제라르(알랭 베쿠)와 함께 미래 스타일의 기괴한 건물에서 살면서, 영화 대부분의 시간을 차가운 신세계를 탐구하며 보낸다.
앙리 슈미트가 담당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걸작인 아르펠 부부의 집에는 자동문과 창문, 주방용품들이 있고, 주둥이로 물을 뿜어내는 물고기로 만든 흉측한 알루미늄 분수도 있다. 이 물고기는 집안에 손님이 있을 때만 작동되고, 가족이나 잡상인, 친척들이 있을 때는 꺼져있다. 위층에 있는 2개의 커다란 창문들은 사람의 눈처럼 보인다. 뒤에서 조명을 받은 아르펠 부부의 머리가 눈동자 구실을 할 때는 특히 그렇다. 정원에는 대문까지 꾸불꾸불한 통로가 나 있는데, 통로의 구조때문에 서로를 뜨겁게 반기며 다가서는 두 여자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통로를 걸어가게끔 만드는 장난기 넘치는 숏이 가능해진다. 마담 아르펠이 동생이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웃들을 만나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골치 아픈 부르주아지의 거북함으로 점철된 가든파티가 열린다. 파티도중에 의자들과 테이블들은 꼴사남게 이리저리로 옮겨지고,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은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물고기 분수로 연결된 지하 튜브에는 구멍이 난다.
이런 일들이 윌로의 주변에서 벌어진다. 플라스틱 호스 공장의 임원인 무슈아르펠은 처남에게 일자리를 구해주지만, 윌로의 취직은 인사담당자의 책상에 찍힌 의문의 발자국과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닮은 호스의 생산을 포함한 온갖 난처한 사건들로 이어진다. 윌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조카 제라르인것 같다. 제라르는 현대적인 주택에서 사는 것을 따분하게 여기며, 장난꾸러기 친구들과 더불어 이것저곳을 뛰어다니기 위해 집에서 탈출한다. 격자무늬 오버코트를 입은 닥스훈트종인 잡안의 개도 지역의 집 없는 개들과 뛰어다니기 위해 집안을 벗어난다.
<나의 삼촌>은 윌로와 같은 지역에 사는 캐릭터들을 상당후 소개한다. 그중에는 빗자루를 사용할 생각은 있지만 결코 사용은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리의 청소부도 있고, 타이어가 납작해져서 트럭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저울이 맞지않게 된 농산물 장사꾼도 있다. 건물관리인의 딸 베티(베티 슈나이더)와 관련한 따듯하고 예민한 서브플롯이 있다. 베티는 윌로에서 사탕을 주면서 잠깐이나마 윌로에게 시시덕거린다. 달콤씁쓸한 마지작 장면에서, 다 자란듯 보이는 그녀는 윌로에게 로맨틱한 제스처를 보여주고파 하는 기색을 보인다. 슬프게도, 일을 진행하기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개들의 조연 연기도 있다. 개들은 서로 서로 자기들 볼일을 보느라 분주하다. 개들은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는다. 개들은 그냥 영화에 등장해서는 영화의 배경을 검사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한다. 타티가 이 개들을 동물수용소에서 찾아냈으며, 개들을 조련하는 대신 그냥 관찰하면서 개들이 뛰어놀게끔 놔뒀다는 것을 나는 격조높은 웹 사이트 Tativille.com에서 알게 됐다. "촬영이 끝났을 때 우리는 개들을 처분해야 했다"라고 타티는 썼다. 동물수용소로 되돌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던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개들을 무비스타로 묘사하는 광고를 신문에 냈거, 개들은 모두 좋은 집을 찾아냈다. 이 가슴 훈훈한 이야기는 타이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자크 타티(1909~1982)는 장편영화 6편과 몇 편의 단편과 TV쇼만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비주얼 코미디의 거장들 중에서도 걸출한 무성영화의 광대로 꼽힌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정확하게 구성된 숏과 세트, 핵션과 개그가 그토록 인상적인 것은 그가 차분한 영역 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윌로는 굶주림에 시달리지도, 시계의 앞면에 매달리지도, 사랑에 빠지지도,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인생에서 멀리 떨어져서, 문명의 장애물들을 뛰어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수행하면서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빈둥거린다.
차르가 프랑수로 파견한 대사의 손자였던 타티는 연예계에 투신하는 것으로 아버지가 하던 표구업의 계승을 피했다. 인기 좋은 빌보드 연기자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우편집배원에 대한 단편을 만들었고, 다음에는 역시 집배원에 대한 영화인 <축제일Jour de Fete>을 만들었다. 윌로를 세상에 소개한 <윌로씨의 휴가>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나의 삼촌>은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제작비 조달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차기작 3편 때문에 빚더미에 올랐는데, 그 작품들을 이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은 인간적인 주인공이 비인간적인 사회와 대면하는 방식에서 그가 더욱 대담하고 급진적으로 변모해갔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다.
나는 윌로씨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그가 어떤 해악도 바라지 않고, 어떤 해악도 일으키지 않으며, (가능한 경우에는 언제든) 어떤 해악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위법 행위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버릇없는 사람의 면전에서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흥미롭다는 듯 보이려고 노력하며, 길 밖에 머무른다. 물고기가 계속 물을 뿜어낼 수 있게끔 잔디밭에서 물이 새는 곳을 발로 밟는 식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침마다 길을 나서서 이리저리 걸으며 모자를 툭툭 치고 파이프를 탁탁 치며 길에서 만나는 재미난 것들을 감사히 여기는 것이다. 집주인의 딸에게 작별을 고할 때처럼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플 경우에도, 그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끔 만들지 않는다.
"내 동생한테 필요한 것은 목표예요." 마담 아르펠이 선언한다. 그러나 윌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는 홀로 남은 상태에서 딱히 정해진 목적지나 행선지 없이, 정처 없이 헤매며 세상을 감상하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역이 아니다. 영화에는 가치다." 나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전혀 몰라었다. 윌로 씨가 그 뜻을 나한테 보여주기 전까지는. 즐거움은 여행길에 있고, 슬픔은 목적지에 있다.
- Roger Ebert [The Great Movies 2]
http://egloos.zum.com/softdrink/v/114386
예고편 : https://youtu.be/NHJcwMrqn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