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자연에 묻혀서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어느 아름다운 산간 마을에 찾아 든다. 베르테르는 마을 무도회에서 멋진 춤솜씨를 가진 쾌활한 여인 로테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게 된다. 춤을 계기로 로테와 친해진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의기 소침해진다. 그러면서도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나고 싶은 일념 하나로 윤리적인 판단과 이성은 잠시 접어둔채로 그녀를 계속해서 방문하게 되고 그들은 어느새 감성이 통하는 다정한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채 로테를 위해서 알베르트와 친분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그 둘은 자살에 관한 찬반양론을 놓고 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결과와 형식만을 중시하는 알베르트가 로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안타까움만을 베르테르에게 안겨 준다. 이쯤에 생일을 맞이한 베르테르에게 로테가 선물로 책과 자신의 리본을 선물하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것은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고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트와 로테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고는 로테와 알베르트에게 작별은 고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와 로테가 결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리고 다시 만난 로테는 왠지 그에게 차갑기만 하다. 그러나 서먹했던 관계도 잠시뿐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 점차 감정의 자제력을 잃어 가는 베르테르에게 한때 로테를 사랑하다 미쳐버린 청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베르테르는 그를 마음 동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처지에 새삼 한탄한다.
한편 베르테르에게 사랑의 고통을 호소하던 한 사나이가 사랑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를 위해 변론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변론은 무의미하게 끝나 버리고 결국 그 사나이는 사형 선고를 받고 만다. 낙심하여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찾지못하는 그에게 남편의 충고를 들은 로테가 만남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게 되어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 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간 베르테르는 억제할 수 없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감정을 억제하는 로테는 작별 인사만을 건넨다. 실의에 빠진 베르테르는 여행을 빙자하여 알베르트에게 호신용 권총을 빌리게 되고 로테의 손에 의해 건네진 그 총을 가지고 목숨을 끊고 만다.
이 작품은 작자인 괴테 자신의 사랑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한다. 이 작품 속의 매력적인 젊은 청년 베르테르가 괴테의 화신인 셈이고, 베르테르가 갈망하던 로테라는 여인은 살롯테 뷔페라는 실존 모셀 속에서 창조된 것이다.
괴테는 베르테르라는 허구적인 인물이 다른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낸 서한과 일기의 형식을 차용하여 소설을 전개시켰다. 이 작품에는 독일 낭만파를 이끌어간 '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 drang)'의 이념과 정열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법칙을 준수하고 타산적인 이성에 꿰맞추어 사는 일이 시민 사회의 미덕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와는 정반대로 정열적인 사랑과 순수한 열정이 더욱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낭만주의적 사고가 잘 집약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소설 속에 묘사된 베르테르의 노란색 복장이 크게 유행하였고, 여인을 위해 자살하는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자살까지 유행했다는 일화가 남겨져 있다. 예술적인 천재에 대한 예찬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작품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을 예찬한 듯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순수와 열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진정한 예술적 천재의 내면을 토로하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테르의 슬픔은 일차적으로는 기혼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실의 온갖 법칙과 제도를 뛰어넘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낭만주의자들의 비극이 담겨 있다. 이 슬픔은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젊은이,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만 주어진 하나의 특권인 셈이다.
분열된 연방 제국으로 이루어져있던 당시 18세기말의 독일 사회는 극심한 침체 상태에 있었다. 부패한 정치와 시민 사회에 뿌리 박혀있던 기독교적인 도덕은 독일의 정서를 속박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태어난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라는 작품은 단순한 연애문학으로서 감상주의에 대한 심도깊은 분석이며 역사적으로 혁명 이전 세계에 팽배한 사회 전반에 걸친 불만과 저항으로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성을 중시하여 개인의 인권과 그에 따른 자유로운 생활의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결국 베르테르의 사랑은 한 개인의 심리적 비극일 수 있으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법과 도덕에 맞섬으로써 당시 봉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이에 저항하는 사회적인 성격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작자 : 괴테(goethe)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의 문호. 세계 4대 시성 중 한 명. 작가 스스로 한평생 '베르테르의 체험'이라는 것을 겪으며 [탓소][친화력]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갈래 : 장편소설, 서한체 소설
성격 : 고백적, 낭만적, 관조적
표현 :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을 편지를 통해 친구에게 고백하는 형식
제재 : 예술과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정
작가 소개 및 작품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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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이 나왔던 시기는 문학사적으로 볼 때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며, 천재 시대라고도 한다.
괴테는 계몽주의가 무르익었을 무렵 태어났고(1749), 그가 창작 활동을 시작한 청년기는 감상주의(empfindsamkeit) 문학을 지나 새로운 문학 운동이 시작되던 때였다. 이 때에 젊은 괴테가 당시의 여러 젊은 작가와 함께 이 문학 혁명인 질풍노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괴테는 감상주의 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독창적인 새로운 문학혁명을 이루게 된 것이다.
18세기 전반의 독일 사회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유럽의 낙오자로서 비참했고 극히 침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분열된 연방 제국은 시골 조그마한 제국이어서 멋대로 정치를 했고 고루한 계급 의식이 확립되어 있어 생활은 절망적이었다. 시민 생활 속에는 완고한 기독교적인 도덕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선진국의 모방만을 능사로 하는 풍조에 젖어 있었고 특히, 이성과 오성을 중히 여기는 라틴 문화가 원래 그 소질을 근본적으로 달리하는 독일 정신을 엄하게 구속하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 루소의 자연주의 철학이 시작하고 있었다. 이것은 위대하고 신성한 인권을 내걸어 인간의 내적 생활의 해방을 부르짖었고 그 당시 가장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교양과 지식을 멸시하여 원시적인 것을 숭상하고 문명을 저주하며 모름지기 자연에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그 가르침은 불행한 인구를 구제하는 것처럼 생각됐다.
고독을 즐기고 자연을 사랑하며 천진스런 인간들에게 호감을 느끼던 젊은 시절의 괴테는 1774년 2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집필하였다.
그는 1772년 여름 wetzlar에서 kestner라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 charlotte buff를 사귀어 산책을 즐기면서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괴테는 그들의 곁을 떠날 결심으로 고향인 frankfurt로 돌아왔지만, la-roche부인의 집에서 상인 brentano의 젊은 아내 maximiliane를 알게 되었으며 다시 연정을 느낀다. 그들은 오누이와도 같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그녀에 대한 감정으로 인하여 작가는 본래의 lotte모습에 maximiliane의 성격을 가미시켰다.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던 괴테에게 때마침 wetzlar에서 일어났던 jerusalem의 죽음을 직접 체험한다. 즉, 불행하게도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던 jerusalem은 자신의 고민을 견딜 수 없어 kestner에게서 빌린 권총으로 자살을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괴테는 직접 작품에 이끌어 들여 베르테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뇌, 자살, 옷차림과 주인공의 성격, 사건의 장소 등을 서술하였다.
참고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ec%a0%8a%ec%9d%80_%eb%b2%a0%eb%a5%b4%ed%85%8c%eb%a5%b4%ec%9d%98_%ec%8a%ac%ed%94%94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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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베르테르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찾아 낼 수 있는 자료들을 전부 모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여러분에게 보여 드립니다. 여러분은 아마 나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베르테르의 정신과 품성에 대하여는 찬미와 사랑을, 베르테르의 운명에 대하여는 눈물을 아끼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베르테르와 같은 상념에 사로잡힌 다정스러운 분들이 만일 당신이 불우한 환경이나 혹은 당신의 허물로 말미암아 친근한 벗과 사귈 수가 없는 처지라면, 이 작은 책자를 당신의 벗으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 1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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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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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오기를 정말 잘했다 싶네 ! 절친한 친구여, 사람의 마음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이상야릇한 것일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며 떨어질 수 없었던 자네를 두고 떠나왔는데도 이렇게 즐거운 기분에 젖을 수 있다니 말일세. 그러나 자네는 용서해 주겠지. 자네 이외의 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인간을 괴롭히게 마련인 그런 숙명을 타고난 것만 같거든. 레오노레는 정말 안됐어.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닐세. 내가 그녀의 여동생의 개성적인 매력에 끌리어 교제를 하고 있는 동안, 레오노레의 가슴속에 나에 대한 연정이 싹텄다 하더라도 나로서야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는 해도
나에게는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레오노레의 감정에 그름을 부은 것이나 아니었을까? 레오노레의 꾸밈없는 심정이 드러나는 언동을 재미있어 하며, 사실은 전혀 우스꽝스럽지도 않은데 나는 남들과 함께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지나 않았던가? 정말 그러치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아, 자신에 대해 스스로 비난하면서도 태연할 수 있으니 인간이란 참 묘한 거야. 친구여, 나는 자네에게 약속하네, 나는 좀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힘쓰겠으며, 운명이 가져다 준 조그만 불행을 그전처럼 자꾸만 되씹는 그런 짓은 하지 않겠네. 현재를 즐기고 과거지사는 과거지사로서 흘려보내겠네. 자네가 말한 것은 정말 옳았어. 내 가장 사랑하는 친구여, 만일 인간이 (어째서 그런 천성을 타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지런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을 되새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현재를 태연히 견디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간의 괴로움은 훨씬 줄어들 텐데 말일세.
미안하지만 어머님께 말 좀 전해 주게. 어머님이 시키신 일은 될수록 잘 처리해서, 그 결과를 곧 알려드리겠다고 말일세. 아주머니를 만나봤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네. 떠들썩하고 괄괄한 성품이기는 하지만 근본은 선량한 여자일세. 우리 몫의 유산을 아주머니가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다는 어머님의 불만을 나는 아주머니에게 분명히 말해 줬네. 여기에 대해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건을 제시한 다음, 그것이 충족되면 언제든지 몽땅 내 주겠다는 것이었네. 그것도 우리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몫을 말일세
이제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네. 어머님께는 모든 것이 잘 돼 가고 있다고만 말씀드려 주게. 친구여, 이 하찮은 용건으로 해서 나는 새삼스레 느꼈는데, 이 세상의 분쟁은 악의나 흉계보다는 오해와 타성 때문에 일어나는 편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네. 적어도 악의나 흉계 쪽이 수적으로 적다는 것은 틀림없네.
그건 그렇고, 이 곳에 온 뒤로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네. 낙원과도 같은 이 고장에서 고독에 잠길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에 귀중한 진정제 구실을 해 주고 있다네. 게다가 이 청춘의 계절은 곧잘 겁에 질리곤 하는 내 마음을 따뜻이 감싸주고 있다네. 모든 나무들, 모든 생울타리들이 꽃다발일세. 차라리 한 마리의 풍뎅이가 되어 향기로운 꽃냄새의 바닷속을 헤매면서 그 속에서 먹이를 찾는 몸이 되었으면 싶네.
이 도시 자체는 쾌적하지 못하지만 교외에는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다네. 이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서, 지금은 고인이 된 m백작이 한 언덕 위에 정원을 꾸몄었네. 그 주위의 언덕들이 가로세로 아롱다롱 아름답게 이어지면서 더할 수 없이 아늑한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곳일세. 그 꾸밈새는 단순하네. 그러나 그 속에 한 발짝만 들어서면 곧 느낄 수 있는 것은, 정원을 설계한 사람이 조경학자 같은 이물이 아니라, 그 속에서 스스로 즐기려는 심정을 지닌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일세. 벌써 몇 번이나 나는 이 정원 안의 황폐한 정자에서 고인이 된 백작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네. 그 곳은 백작이 생전에 사랑했던 장소요, 나도 또한 그 곳이 마음에 드네. 머지않아 나는 이 정원의 주인이 될 걸세. 이제 겨우 2,3일밖에 안 되었지만, 이 곳 정원사도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고 있네. 내가 이 곳 주인이 되어도 그가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네.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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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상쾌감이 내 영혼에 충만해 있네. 내가 마음껏 음미하고 있는 요즘의 달콤한 봄날 아침과도 같은 그런 상쾌감이었네. 나는 혼자서 호젓이 시간을 보내며, 나 같은 삶의 영혼을 위해서 마련된 성싶은 이 고장에서 내 삶을 즐기고 있네. 나는 정말 행복하네. 친구여, 나는 편안한 심정에 잠겨 있다네. 덕분에 내 예술이 피해를 입고 있는 정도일세.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릴 수가 없네. 한 획의 선조차 그릴 수가 없는 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처럼 위대한 화가가 되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네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드높은 하늘에서 비치는 햇빛은 울창한 숲의 꼭대기에서 머뭇거리며, 그 속의 성전에는 다만 몇 줄기의 빛살만이 새어 들어올 뿐일게. 그럴 때면 나는 소리내어 흐르는 시냇가의 무성한 풀밭에 누워 대지에 얼굴을 바싹대고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갖가지 풀들을 살펴보곤 한다네. 그리하여 풀줄기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생물들 세계의 준 동이며, 기어다니는 벌레와 날벌레들의 무궁무진한 여러 모습들을 가슴 뿌듯이 느끼는 걸세. 그러고는 새삼 우리네 인간을 자기의 모습과 같이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실감하고, 우리를 영원한 환희 속에서 떠돌게 해 주신 지극히 높고 자애로운 분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네. 그러다 보면 친구여 ! 내눈은 어느 결엔지 촉촉이 젖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하늘이 마치 애인의 모습과도 같이 온통 내 영혼 속에서 안식을 취한다네
그럴 때 나는 그지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히며 생각에 잠긴다네. 아아, 내가 이것을 표현할 수가 있다면, 내 기슴 속에 이토록 충만하고, 이토록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화면에다 내뿜을 수가 있다면...... 그리하여 내 영혼이 무한하신 하느님의 거울인 것처럼, 그것을 내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가 있다면......하고 말일세
친구여, 그러나 나는 한창 그런 생각에 잠겼다가도 그만 힘이 빠져 버리고 만 다네. 이 장엄한 현상의 힘에 기가 꺾여 버리고 마는 걸세.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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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는 사람의 마음을 호리는 정령이 있는지, 아니면 성스럽고 생생한 상상력이 내 가슴속에 깃들어 그것이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이토록 낙원같이 바꾸어 버리는 건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네. 시내 입구 가까운 곳에 샘이 하나 있는데, 인어의 화신인 멜루지네 자매가 물에 이끌리듯, 나는 그 샘에 끌려가곤 한다네
자그마한 언덕을 내려가면 동굴이 하나 나오고, 거기서 다시 층층대를 스무 단쯤 내려간 곳에 그 샘이 있는데, 맑디맑은 샘물이 대리석 바위틈에서 솟아나고 있네. 샘을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돌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다란 나무들, 얼굴에 확 끼치는 시원스런 냉기, 이 모든 것들에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무엇, 그리고 사람을 전율케 하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것일세.
나는 거의 날마다 그 샘가에 1시간 가량씩 앉아 있다네. 거시 앉아 있노라면, 시내에서 아가씨들이 와서 샘물을 길어 가는 걸세.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필요한 일이네. 그것을 보고 앉아 있으면, 부족사회 시대의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이나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세
마을 어른들이 샘가에서 서로 인사를 트고, 혼담을 교섭하며, 우물가에는 자비로운 정령들이 떠돌고 있는 걸세
아아, 이런 나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여름의 기나긴 여행 끝에 시원한 샘물로 기운을 되찾은 경험이 없는 사람일거야.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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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서를 보내 주겠단 말인가?
제발 그 짓만은 하지 말아 주게. 나는 이제 이 이상 지도를 받거나 고무되거나 자극을 받고 싶지가 않네. 내 가슴은 스스로도 충분히 소용돌이치고 있다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진정시켜 줄 자장가일세. 그리고 그 자장가들은 내가 애독하는 호메로스의 시속에 얼마든지 있다네. 나는 설레는 나의 격정을 그 자장가로 여러 차례 달래어 왔네. 내 마음처럼 이토록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것은 또 없을 걸세. 새삼스레 이런 소리를 자네에게 할 필요조차 없겠지. 슬픔에 잠겼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인 흥분으로 치닫는가 하면, 달콤한 우울에서 파괴적인 정열로 변하여 가는 내 모습을 목격하고 자네가 곤혹스러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말일세. 사실 나는 내 마음을 병든 어린애 다루듯 하고 있다네. 어떤 일이건 떼를 쓰는 대로 다 받아 줄 수밖에 없거든. 딴 사람들한테 이런 소리하지 말게. 좋지 못한 방향으로 해석할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일세.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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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장 사람들과도 벌써 낯이 많이 익었고, 모두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여 준다네, 특히 어린애들은 나를 무척 따른다네. 처음에 내가 이 곳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허물없이 물어봤더니. 내가 자기네를 놀리는 줄 알고 몹시 퉁명스럽게 대하는 이들도 있었네. 그러나 나는 화를 내지 않았어, 다만 내가 여태껏 몇 번이나 느끼고 있던 사실을 더욱 생생하게 느꼈을 따름일세. 다시 말하자면, 다소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서민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위엄이 손상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서 언제나 냉담하게 서민들을 멀리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걸세. 그런 반면에 자기만은 파격적인 체하고 일부러 공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거만스러움을 서민들이 한층 더 느끼도록 하는 경박하고 악의적인 사람들도 있는 거라네.
우리네 인간들이 모두 평등하지 않으며, 또 평등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잇네. 그러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 이른바 하층계급 사람들을 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은 패배가 두려워서 적군 앞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자와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네.
며칠 전에 새가 샘에 나갔더니, 거기 젊은 하녀 한 사람이 있었네. 그녀는 물통을 층층대 맨 아래에 놓고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더군. 물통을 머리에 이도록 거들어 줄, 누군가 아는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살피는 것이었네. 나는 아래로 내려가서 그녀를 보고 말했지
[거들어 줄까요, 아가씨?]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했어
[아니예요, 나리]
[사양할 것 없어요]
그녀는 머리 위의 또아리를 바로잡았고, 나는 물통을 이도록 거들어 주었네.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층층대를 올라가더군.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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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계층 사람들과 알게 되었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아직 찾지 못했네. 내가 지닌 어떤 점이 사람을 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나를 좋아해 주고 있네. 그러나 이 사람들과 나는 다만 잠시 동안만 길을 같이 가는 것 뿐이요, 머지않아 서로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슬프다네. 이 곳 사람들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냐고 자네가 묻는다면, 다른 고장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네. 인간들이란 대개 어슷비슷한 거라네. 인간들은 대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일에 다 써 버리고서, 자유로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일에 다 써 버리고서, 자유로운 시간이 그저 조금이라도 남아돌게 되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잃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그 시간을 없애버리려고 기를 쓰는 것이라네. 아아,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련 가!
그런데 이 고장 사람들은 정말 선량하다네.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을 잊고 아직도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는 즐거움을 이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네. 훌륭하게 차려 놓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마음놓고 허물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마차를 같이 타기도 하고, 댄스파티에 참석하기도 하네. 그런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아주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네. 그러나 나의 내부에는 아직도 많은 다른 힘이 잠자고 있으며, 그 힘은 전혀 사용되지도 않은 채 퇴장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레 감추어야만 한다네. 아아,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죄어드는 것만 같네
그러나 오해를 받게 마련인 것이 우리의 운명인 걸 어쩌겠나.
아아, 어릴 적 친구였던 그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차라리 그녀를 몰랐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라리지는 않을 것을 !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네.[너는 바보야!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을 찾고 있으니까]그러나 그녀는 나의 친구였다네. 그 무렵 나는 그녀의 위대한 영혼과 접촉했었네. 그 영혼이나를 감싸주었을 때, 나자신이 현실의 나 이상의 존재처럼 느껴졌었네. 다시 말해서,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수가 있었던 걸세. 전말이지 그 때 나는 내 영혼이 지닌 힘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걸세. 그녀와 마주 대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영묘한 감정에 휩싸여서, 자연을 고스란히 내 품안에 안아 들일 수 있었네. 우리의 교제는 더할 수 없이 섬세한 감수성, 비길 데 없이 날카로운 예지의 활동이 아니었던가. 그 활동이 갖가지 변화를 빚어내면서 나중에는 장난으로까지 번져 갔지만, 그러한 변화들이 모두 천재의 표시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아아, 그녀는 나보다 연상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무덤으로 가 버리고 만 걸세. 결코 나는 그녀를 잊지 않으려네, 그녀의 그 꿋꿋한 기질과 숭고한 관용을.
2,3일 전에 나는 v라는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솔직한 청년이었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으로 자신이 남달리 영리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아는 것이 많다고 믿고 있는 눈치였네.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상당한 노력가인 모양이야. 예컨대 그는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일세. 내가 그림을 꽤 그리고, 그리스어를 안다는 사실(이것은 이 고장에서는 놀라운 일이거든)을 저해 듣고는 나를 찾아와서, 그는 자신의 갖가지 지식을 늘어놓았네. 바토에서 우드에 이르기까지, 드필에서 빈켈만에 이르기까지를 논술하는 거야. 그러고는 슬 이론의 제1부를 독파했을 뿐 아니라, 고대연구에관한 하이네의 강의 필기 본을 갖고 있노라고 역설하는 것이었네. 나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네.
또 한 사람 훌륭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공국의 법무관으로서 상냥하고 성실한 사람일세. 듣건대 그에게는 아이들이 아홉이나 있는데, 그 사람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광경을 보면 흐뭇하다는 걸세. 특히 그 사람의 맏딸에 대한 평판이 자자하네. 법무관이 나더러 한번 놀러 오라고 했으므로, 일간 찾아가 볼 생각일게. 그는 여기서 1시간 반쯤 걸리는 공작의 사냥별장에 살고 있네. 부인이 죽은 뒤에 허가를 얻어서 그리로 이사를 갔다는데. 이 곳 관사에서 그대로 사는 게 그로서는 견딜 수 없이 슬프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 밖에 두세 명의 괴짜들도 알게 되었는데, 아주 비위에 안 맞는 친구들일세. 특히 친한 체하는 그 태도들이 딱 질색일세.
그럼 안녕! 이 편지는 자네 마음에 들겠지. 아주 사실적이니까.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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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함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바지만, 그런 생각이 내 머리에도 줄곧 떠오른다네. 인간의 활동과 연구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속에 갇혀 있는 꼴이란 말일세. 그런 것을 눈앞에 보게 되거나 또는 인간들의 모든 활동이 목적하는 바는, 결국은 갖가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 욕망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가엾은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또 인간의 탐구가 어느 정도가지 이르면 만족해 버리고 마는 것은, 우리를 가두어 두고 있는 감옥의 벽에다 화려한 희망과 밝은 풍경을 그려 놓고서 좋아하는 허울좋은 체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거나 하면, 빌헬름이여,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마네. 나는 나 자신의 내부로 은둔하고 거기서 한 세계를 발견하는데, 그것이 또한 표현이나 생동하는 힘으로서 나타나기보다는 예감이나 막연한 욕망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일세. 그리하여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나의 오관 앞에 희미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나는 꿈결인 양 그 세 계의 더 깊은 안쪽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네.
어린애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린애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 박식한 가정교사들의 견해가 일치되고 있네. 그런데 어른들도 어린애나 마찬가지로 이 대지 위를 정처 없이 헤매면서 저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체, 뚜렷한 목적도 없이, 비스킷과 케이크, 그리고 채찍으로 조종되고 있는 것일세
이러한 사실은 아무도 시인하려 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일세.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자네가 뭐라고 말할 건지 나는 알고 있네. 그러니 나도 기꺼이 승복하겠네. 그런 인간, 곧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별생각도 없이 하루해를 보내며 인형을 안고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과자를 넣어 둔 서랍께로 살금살금 조심스레 다가가서, 마침내 소망하던 물건을 가지면, 그것을 한입 가득 먹고 나서 [더줘!] 하고 조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일세. 또 자신의 무가치한 사업이나 자신의 욕정에까지 그럴듯한 명칭을 붙이고서,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대사업이랍시고 버젓이 내세우는 그런 녀석들도 행복한 거야
그렇게 할 수 있는 녀석들은 행복하단 말일세. 그러나 겸허한 마음으로, 이런 모든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네. 그런 사람들은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이 자기네의 조그만 정원을 낙원처럼 가꾸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일이며, 불행을 안고 있는 자들도 그 무거운 짐에 허덕이면서도 쉬지 않고 제길 을 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단 1 분이라도 더 오래 햇빛을 쬐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걸세
그렇지, 그런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역시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부터 이룩하며, 또한 행복한 것일세. 왜냐하면 그들 역시 일게 인간이기 때문일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답답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가슴속에서는 언제나 자유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거라네. 그러하여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정신을 가지고 있는 거지.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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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옛날부터의 내 성벽을 알고 있겠지.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하여 그 곳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조촐하게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그것 말일세. 그런데 여기서 나는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런 곳을 발견했다네.
이 도시에서 1시간쯤 걸리는 곳에 발하임이라는 마을이 있네. 언덕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그 위치가 아주 재미있네. 그 마을에서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별안간 골짜기 전체가 내려다보인다네. 마을 여인숙에서는 나 이에 비해 아주 유쾌하고 활발한 안주인이 포도주, 맥주, 코피 따위를 팔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두 그루의 보리수일세. 사방으로 넓게 퍼진 나뭇가지들이 교회 앞의 조그만 광장을 덮고 있는데, 그 광장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는 농가와 곳간, 그리고 저택들이 들어서 있네. 이렇게 정답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광장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라네. 나는 여인숙에서 조그마한 탁자와 의자를 그 광장으로 들고 나와, 거기서 코피를 마시며 호메로스를 읽는다네. 맑게 갠 어느 날 오후, 내가 처음으로 아주 우연히 그 보리수 그늘 아래에 왔을 때, 광장은 정말 고요했었네. 모두들 일을 하러 들에 나간 것일세. 오직 4살쯤 된 어린 사내아이 하나가 땅바닥에 앉아서 또 한 아이
태어난지 반 년 가량밖에 안 된 갓난아기를 제 무릎 사이에 앉히고, 두 팔로 아기를 안아 제 가슴에 기대어 놓고 있는데, 말하자면 큰 아이의 팔이 일종의 의자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었네. 그 사내아이는 검은 눈으로 쉴새없이 사방을 둘러보면서도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네. 그 광경이 내 마음에 들었다네. 나는 그 맞은편에 놓여 있는 쟁기에 걸터앉아 매우 즐거운 기분으로 이 의좋은 형제 상을 스케치했네. 바로 그 곁의 생울타리, 곳간 문, 그리고 부서진 짐수레의 바퀴 두세 개 등을 있는 그대로 그 속에 넣어 그렸네. 그리하여 1시간 뒤에는 내 주관적인 잔재주가 조금도 가미되지 않은, 잘 정돈된 재미있는 그림이 완성되었네. 이를 계기로 앞으론 자연만을 근거로 그림 그릴 생각을 더욱 굳혔네. 자연만이 무한히 풍요로우며, 자연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드는 걸세. 그것은 세상의 규칙과 범절에 따라 판에 박힌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이웃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몹쓸 악당이 되거나 하는 일이란 결코 없는 것과 마찬가질세. 그러나 그 반면에, 모든 규칙은 아무래도 자연의 진정한 감정과 그 참된 표현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일세. [그건 지나친 말이다! 규칙은 제한을 할뿐이다. 불필요한 덩굴을 잘라 낼 뿐이야] 이렇게 자네는 말하겠지
좋아, 그렇다면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네. 그것은 마치 연애와 같은 걸세. 어떤 청년이 한 처녀에게 홀딱 반해서 매일같이 그녀의 곁에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자신이 그 처녀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쉴새 없이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정력과 재산을 다 기울이고 있다고 치세. 거기에 한 사람의 속물, 이를테면 어떤 관직에 있는 사람이 찾아와서 그 청년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걸세.[젊은이! 연애는 인간적일 뿐이오. 따라서 당신도 인간적으로 연애를 해야만 하오. 당신의 시간을 나누어서, 일부는 사업에 돌리고, 그 나머지 시간은 애인에게 바치도록 해요. 당신의 재산을 잘 관리할 것, 그리하여 필요경비를 따로 제쳐두고 그 나머지 몫으로 애인에게 선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왈가왈부 하진 않아요. 다만 그것도 너무 잦으면 안 돼요. 애인의 생일이나 명명일 같은 때에만 하도록 해요] 그 충고에 따른다면 그는 쓸모 있는 청년이 되겠지. 나 역시 그를 관리로 채용하도록 어느 군주에게나 추천할 걸세. 그러나 그는 애인으로서는 그것으로 끝장일세. 그리고 그가 만일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거야. 아아, 나는 자네들에게 묻고 싶네! 천재의 분류가 둑을 무너뜨리고 소용돌이치며 밀어닥쳐 와서, 자네들의 영혼을 뒤흔들며 경탄케 하는 일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드문가?
그것은 그 분류의 양쪽 둑가에 점잖은 신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세. 그 신사들이 자기네 정원이나 튤립 화단, 혹은 채소밭이 망가질까 봐 재빨리 제방을 쌓기도 하고, 배수 공사를 하기도 함으로써 닥쳐올 위험을 미리 막기 때문이란 말일세.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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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나는 비유와 연설을 늘어놓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 아이들이 그 위에 어떻게 왰는지 자네한테 이야기하는 것을 잊은 것 같구먼. 어제 편지에서 자네에게 단편적으로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그림의 분위기에 사로잡혀서 그 쟁기에 걸터앉은 채 2시간이나 그대로 있었다네. 저녁때가 다 되었을 때 가정주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그 아이들에게로 급히 다가왔네. 아이들은 그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얌전히 있었던 걸세. 그 여자는 한 손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보고 멀리서부터 소리를 지르더군.[필립! 너 정말 착하구나!]
그녀는 나에게 눈인사를 했네. 나도 눈인사를 하며 일어나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아이들의 어머니냐고 물었지.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큰아이한테 흰빵 반쪽을 준 다음, 갓난아기를 안아 올리더니 어머니의 사랑이 물씬 풍기는 키스를 하더군
그녀는 말했네. [이 필립에게 아기를 맡겨 놓고서 제일 큰애를 데리고 시내에 갔었지요. 흰빵니며 설탕, 죽을 쓸 질냄비를 사려고요]
보니 뚜껑이 떨어져서 열린 그 바구니 속에 그 물건들이 다 들어 있었네
[한스(이것이 갓난아기의 이름이었네)에게 오늘 저녁에 수프를 끓여 주려고요. 개구쟁이 녀석 큰아이가 어제 질냄비를 깨뜨려 버렸거든요. 남은 죽을 서로 먹으려고 필립과 싸우다가 말씀이에요]
그 큰아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나는 물었네. 풀밭에서 두세 마리의 거위를 뒤쫓고 있노라고 그녀는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큰아들이 뛰어오더니 바로 아랫동생에게 개암나무 회초리를 선물하는 것이었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녀는 그 마을의 학교 교사의 딸이며, 그녀의 남편은 사촌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스위스에 여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모두들 남편을 속이려 한 거예요]하고 그녀는 말을 이였네.[남편이 편지를 몇 번이나 내었는데도 답장이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로 떠난 거지요. 언짢은 일이나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남편한테서 도무지 소식이 없어서요......]나는 그녀와 그대로 헤어지기가 어쩐지 서운해서, 두 아들에게 1크로이째르씩을 주고 갓난아이를 위해서도 1크로이째르를 그 어머니에게 주면서, 시내에 나가거든 수프에 곁들일 흰 빵을 사다주라고 말했네. 그런 연후에 우리는 헤어졌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벗이여, 고백하거니와 도저히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을 때는, 그런 여인은 안달복달하는 법 없이 행복스럽게 정착하여, 애환의 좁은 테두리를 돌며 그날 그날을 살아 나가는 거라네. 나뭇잎이 지는 것을 보고서도 이제 겨울이 오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뿐, 다른 생각이라고는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지.
그 때 이후로 나는 곧잘 그 곳에 간다네. 아이들은 이제 나하고 아주 낯이 익어서, 내가 코피를 마시고 있을 때에는 설탕을 얻어먹고, 저녁에는 버터 빵과 우유를 노나 마시곤 한다네. 일요일에는 그들에게 1크로이째르씩을 꼭꼭 주기로 하고 있네. 예배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거기 가지 못했을 때에는 주막집 여주인에게 나 대신 그들에게 돈을 주라고 해 두었네.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어져서 나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해 준다네. 특히 마을아이들이 많이 모였을 때면 그들의 드센 감정과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이나를 즐겁게 해 준다네.
이 훌륭한 신사에게 아이들이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해서 애들의 어머니가 무척 신경을 쓰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느라고 나는 꽤 애를 먹었다네.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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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내가 그림에 대해서 썼던 것은, 시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일세. 멋진 대목을 찾아 내어 그것을 대담하게 표현하면 되는 걸세. 그렇게 하면 물론 적은 말로써 많은 것을 나타낼 수가 있지. 내가 오늘 목격한 광경을 그대로 묘사한다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가가 될 걸세. 그러나 문학이니 정경이니 목가니 하는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나. 우리는 자연현상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면 됐지,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주물럭거릴 필요는 없네.
이런 서론을 늘어놓았다고 해서 그야말로 대단한 일을 기대한다면, 자네의 그 기대는 완전히 어긋날 걸세. 그토록 세차게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어느 농가의 한 젊은 머슴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내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것이고, 또 자네는 으레 내가 과장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겠지. 아무튼 그 무대는 역시 발하임인데, 이런 희한한 이야기가 생길 만한 곳은 역시 발하임밖에는 없다네. 그 보리수 아래에서 코피 파티가 있었네.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별로 탐탁지 않았으므로, 핑계를 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었네.
농사꾼 차림의 한 젊은 청년이 그 근처의 농가에서 나오더니, 지난번에 내가 걸터앉아서 스케치를 했던 그 쟁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네. 그 인상이 마음에 들기에 나는 그에게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보았네. 우리는 곧 가까와졌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늘 그렇지만, 곧 흉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어떤 과부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데,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네. 그 여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면서 칭찬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나는 곧 이 청년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여주인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아챘지.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여주인은 이제 젊지도 않고, 첫결혼에서 하도 시달림을 당했기 때문에 재혼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네. 그의 말투로 미루어, 그 여주인이 이 청년에게 있어서는 다시없이 아름답고 매력있는 존재이며, 또 첫결혼에서 겪은 그 쓰라린 상념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도 그녀가 자기를 선택해 주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었네. 이 청년의 순수한 모정, 그 사랑과 진정을 그대로 되풀이해야만 하겠지. 여간 위대한 시인이 아니고서는 그의 몸짓이며 표정, 목소리에 담긴 정감, 눈길 속에 깃들여 있는 정열 등을 동시에 자네에게 전달하기는 불가능할 걸세. 아니,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도 그의 태도와 표정 속에 어리어 있는 그것을 재현한다면 서투른 실패작이 될 뿐이지. 특히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내가 자기와 여주인과의 관계를 좋지 않게 받아들이고, 여주인의 정숙한 처신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하고, 그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점이었어. 여주인의 얼굴 생김새며, 젊음의 매력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꼼짝없이 자기를 사로잡는 그녀의 몸매에 대하여 얘기하는 그 청년의 태도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하는 것을, 나는 다만 마음속으로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일세. 나는 출생 이후 오늘날까지, 안타까운 욕정과 뜨거운 소망이 이토록 순수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일찍이 본적이 없네. 아니,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네. 이러한 순수성과 진실을 생각하면 내 영혼은 그 심중으로부터 불타오른다네. 그 진실과 애정의 생생한 모습은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오네. 마치 그 불꽃이 나에게 옮겨 불기라도 한 것처럼 숨가쁘고 애가 탄다네. 이런 소리한다고 나를 나무라지는 말게.
나는 될수록 빠른 시일 안에 그녀를 만나 보고 싶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를 만나는 건 피하는 게 났겠네. 애인의 눈을 통하여 그녀를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네. 직접 보면, 지금 내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는 그녀와는 딴판일 우려가 있으니까. 그 아름다운 영상을 무엇 때문에 깨뜨려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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