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 Photo-Image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 Photo-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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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스타트를 끊은 영화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정통서부영화 이후 수정주의 서부영화를 거쳐 나타난 스타일의 영화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렇게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포함한 감독들이 이탈리아 출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시 이탈리아 하면 스파게티만 떠오르는 미국의 대륙적 무식함이란 )

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서부극과는 주제부터 시작해서 꽤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지만 워낙에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보니 스파게티 웨스턴을 정통 서부극으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한 공중파 방송에서 정통서부극이랍시고 황야의 무법자 3부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 그리고 아무도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스파게티웨스턴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황야의 무법자는]는 사실 모방작이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를 보고 허락없이 리메이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장르의 효시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참고로 요짐보도 여러모로 혁명적인 영화라는 평을 듣는다.)

서글서글하고 시원한 첫인상의 다른 서부영화 배우들과 다르게 시종일관 인상을 팍 쓰고 있는 모습의 클린트 이스트 우드.. "서부는 니가생각하는 것 처럼 그런 영웅적인 곳이 아니야 짜샤" 라고 말하는 듯하다.
줄거리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특징 답게 정통서부극이나 수정주의 서부극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주인공(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름없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국경근처의 멕시코 마을에서 두개의 패거리가 서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양쪽을 왔다갔다 하며 돈을 챙긴다.
그 후 갱에게 붙잡힌 무고한 여자를 풀어주고는 한 쪽갱을 다른 쪽 갱을 이용해 몰살하고는 남은 갱들과도 결투를 벌여 남은 갱들도 모두 몰살 시킨다.
(물론 방법론 적인 측명에서는 야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60년대 영화의 특징답게 영화의 연기보다는 연극의 연기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측면들이 있다. 어색하게 큰 액션이라던가 온 몸을 사용해서 하는 감정연기 같은 것들을 촌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귀엽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지금의 관객들이야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며
"완전 착한 주인공 아니냐?"
"엥? 원래 서부극 줄거리가 이런거 아닌가요?'"
라고 질문을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정의의 편인 보안관이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역경을 이겨내고는 정정당당한 결투를 통해 잔악무도한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는 승리한다!']
스타일의 정통 서부극이 대세였던 세상에

'정의 보다는 돈을 추구하고'
'비겁한 결투를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 스파게티 웨스턴은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잔혹한 혹평도 들어야 했다.

정통 서부극의 영웅인 배우 존웨인은 이 영화를 찍은 클린트 이스트 우드를 향해
"피자나 먹으러 이탈리아에 갔냐?"
라는 조롱의 말을 하기도 했다.(정작 촬영지는 스페인이었다.)
클린트 이스트 우드는 대 선배인 그를 향해
"당신은 그럼 항상 햄버거만 먹습니까?"
라고 대답했다고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좋은 작품을 냈을지 더 나쁜 작품을 냈을지 궁금하다.
이러한 혹평의 배경에는
'서부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다.'
라고 생각했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철학이 담겨있다.

서부영화를 통해 처절하고 잔혹했던 자신들의 역사를 미화하고 신화화 하는 미국사람들에게 제 3자의 눈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들쑤셔대는 외국인이 반가울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름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붙인게 아닐까..)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개봉당시 이러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감독 및 디렉터들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꾸어서 개봉했다고 한다.

[황야의 무법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할리우드의 신인스타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올려놓은 영화로도 유명하다.

1959년에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로하이드가 인기를 끌면서 신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그는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까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3부작을 찍으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는다.

영화 촬영 전 만 오천 불에 불과하던 그의 출연료는 영화가 끝날 때는이십오만 불이 되어있었다.
사실 레오네 감독이 각본을 쓸 때는 주인공으로 다른 배우를 염두해 두고 있었지만 개런티를 감당하지 못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섭외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 모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스트우드는
'그냥 휴가처럼 촬영하고 와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찍으러 스페인으로 갔다고 한다.
(최...최...최고의 휴가다..!)

이 삼부작으로 번 돈을 가지고 이스트우드는 자신만의 작품을 찍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 까지 이어져 배우 겸 감독이 되었다.
(역시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이스트 우드가  감독 겸 주연을 한 작품 중 자신이 연기했던 모든 서부극의 인물들과 생명이 끝난 서부극에 작별을 고하는 '용서받지 못한자'가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리뷰를 하도록 하겠다.)

[황야의 무법자]가 인기를 끈 데에는 영화에 삽입 된 음악들도 한 몫을 하는데 에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음악은 듣기만해도 서부의 분위기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촌스러움이 사라지는 마법의 노래..!
채찍소리와 휘파람 소리를 섞어 만든 영화테마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 살려준다.
이후 둘의 인연은 [황야의 무법자 3부작]과 레오네 감독의 유작인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 까지 이어지며 에니오 모리코네도 큰 명성을 얻었다.
(모리코네는 최근에 쿠앤틴 타란티노의 현대 서부극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결과는...)

카메라를 낮게 두고 인물과 배경은 멀리두고 촬영한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또한 [황야의 무법자]촬영기법은 상당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카메라를 인물들의 아래쪽에서 비추며 인물과 배경을 촬영한 기법은 60년대 영화 답지 않게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총평을 하자면
[꺼져가는 불씨였던 서부영화 라는 장르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틀을 깨고 나와 기름을 부어버린 혁명적인 영화]
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요짐보를 찍은 쿠로사와 측에게 소송이 걸려서 쿠로사와 측은 동아시아에서의 [황야의 무법자] 배급권과 영화 전체 수익의 15%의 로열티를 받았는데 그것이 요짐보로 번 돈보다 몇십배는 많았다고 한다...

이후 쿠로사와 감독을 만난 레오네 감독은
"그래도 내 덕분에 돈 좀 많이 벌었지 않냐."
며 면전에서 농담을 건네었다고 한다.
(대가의 뻔뻔함이란..)

다음 작품은 [황야의 무법자]의 다음편인 [석양의 건맨 - A few dollars more(1965)] 을 리뷰 할 예정이다.
(뒤로 갈수록 좀 더 재미있는 삼부작이다.)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1080p

황야의 무법자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개봉 1964, 스페인, 이탈리아,

https://m.blog.naver.com/mrj115/220838780795

https://youtu.be/CpZjvbSC9_M
https://youtu.be/h4DJonFjBYg
https://youtu.be/HjjDOdaFZg0

황야의 무법자 3부작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1080p
1_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1080p
2_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1965.1080p
3_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1080p

https://heisme.skymoon.info/article/SuggInfo/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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