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한적한 시골, 1남 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남 자넷(janet frame as a child: 카렌 페구슨 분)은 잔뜩 부풀려진 빨간 머리와 뚱뚱한 몸매 그리고 못생긴 얼굴로 친구들에게조차 소외당하는 천덕꾸러기다. 친구들의 관심을 끌고자 아버지의 돈을 훔쳐 눈까ㄹ사탕을 한웅큼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지만 무서운 선생님에게 들켜 자넷(janet frame as adolescent: 알렉시아 케이 분)의 작전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외톨이 신세가 된 그녀는 같은 처지의 친구를 사귀면서 문학과 성의 신비로움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것도 한순간, 아버지 앞에서 섹스에 대해 언급했다가 호되게 꾸중듣는 순진한 자넷은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문학이라는 순수한 감성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대학에 입학한 자넷(janet frame: 케리 폭스 분)은 빠듯한 집안 살림으로 인해 국민학교 선생 노릇을 하며 등록금을 벌고 있지만 타고난 쑥스러움으로 선생 자리도 박차고 나온다. 잘생긴 심리학 교수만을 짝사랑한 채 오로지 책만을 벗삼고, 소심증으로 동료들과는 격리되어 사는 자넷, 그녀의 대인공포증은 사람들로부터 정신분열증으로 오해받아 급기야는 정신병원으로 수용되고 세상과 철저한 벽을 쌓게 된다.
오랜 정신병원에서의 생활 후에 그녀는 여행을 떠난다. 파리, 런던을 거쳐 스페인에 머무르는 동안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하지만 이별을 하게 된다. 그녀는 삶과 사랑에 대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방황하다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분열증은 의사의 오진이었음을 확신하고 성장기에서 겪은 비정상적인 체험을 자서전으로 출간하게 된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202
여성작가 자넷 프레임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 탓에 캠피온의 영화 중 가장 사적이기도 하지만 캠피온의 영화 중 가장 두드러진 일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색채의 사용이다. 컬러의 의미는 컬러tv 시대를 맞이하면서 퇴색돼버렸지만 영화 속에서는 여전히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사실 이만큼 병적인 색깔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드물다. 여기에서의 색채사용은 그 어느 인상주의 회화보다도 질감이나 정서면에서 적절하다. 물론 이 역시 카메라 필터를 통해, 혹은 인화과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방식이다.
자넷은 어린 시절 언어가 가지는 힘, 이야기하는 기쁨, 성의 신비를 포함한 인생의 비밀을 발견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빠의 간질과 사치스러웠던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상처받는다. 자신을 너무나 평범하고 매력없게 느끼는 자넷은 점점 학교에서 고립되어 시의 세계에 빠져든다. 대학에서도 수줍고 진지한 학생으로 지내지만 예민한 감수성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을 떠나 작가로서 자신을 키워나가면서 첫 번째 소설을 완성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럽으로 떠난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미국인 시인과 사랑을 나누다가 임신을 한 자넷은 삭막한 런던생활을 견디기 위해 전력을 다해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정신병원에 간 자넷은 이전의 정신분열 진단은 오진이었음을 확인하고 성장기에서 겪은 비정상적인 체험을 자서전으로 출간하게 된다.
http://egloos.zum.com/simsulbo/v/1256334
이 영화를 소개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무지 길거든요. 원래는 160분이 넘는 영화인데 우리나라엔 140분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좀처럼 중단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남성관객을 유혹하는 광고 하나 할까요. 이 영화 후반부에 여주인공의 아무런 모자이크 없는 헤어누드가 나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확인하십시오.
사설이 길었는데 이 영화는 "피아노"로 유명한 여성감독 제인 캠피온이 만든 뉴질랜드 영화입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여성작가 자넷 프레임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한 여인의 일생을 잘 그려낸 수작입니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자넷은 뉴질랜드 시골의 가난한 집안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양배추 인형 같은 빨간 머리에 뚱뚱한 외모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자랐습니다. 소심한 성격의 자넷은 선생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이 자넷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사귀면서 문학을 알게 되고 숨어 있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하지만 집안의 연이은 우환과 주위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상처 받은 자넷은 더욱 소심해지는데 그만 사람들의 오해를 사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맙니다.
정신병원의 생활은 지옥과도 같습니다. 당시 무지했던 정신과 의사들은 멀쩡한 사람을 전기충격으로 미치광이로 만들고 바보를 만드는 뇌수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댑니다. 자넷도 뇌수술을 받을 위기에 처하지만 다행스럽게 병원을 빠져 나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쉬지 않고 써냈던 소설이 세상에 알려져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그 이후로도 자넷은 끊임없이 주위사람들로부터 상처 받는 인생이 계속됩니다만 오로지 문학에 대한 열정 하나로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훌륭한 작가가 됩니다.
제인 캠피온은 자넷의 일생을 참으로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상당히 감정적으로 빠져들기 쉬운 상황들을 무심한 듯 보여 줍니다. 그런 감독의 시선이 더 깊은 감동을 줍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여성감독이기 때문에 더욱 자넷의 일생을 잘 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인 캠피온은 자넷의 일생을 통해 자신의 인생도 투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남다른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누구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자넷이 성공한 작가이기에 그의 인생이 감동적인 건 아닙니다. 자넷의 상처와 고통,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237343&cmpt_cd=rport
오래된 영화를 꺼내보다, '내 책상 위의 천사'
제인 캠피온 감독, 어른이 된 소녀가 들려주는 희망과 위로에 대한 이야기
이은지(eunhastar)
09.10.14 11:30
상처 입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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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출렁대다 서서히 사라지면 우리는 그 곳에 혼자 남겨진 여자를 본다. 분명 인간사에 대한 영화임에도, 이 영화 속엔 사물과 풍경이 더 아름답게 드러날 때가 있다. 그저 외롭고 혼자였던, 그래서 누구의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주인공이 결국엔 세상과 소통하고 화해할 때, 세상은 더 아름답게 빛난다.
이 영화는, 모든 이빨이 썩어가는 육체적 고통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적 혼란을 겪는 여자, 그녀의 육체와 욕망, 슬픔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와 고통뿐인 삶에서도 마침내 희망은 발견되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중량감으로 영화는 섬세한 울림을 건넨다. 누구나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바로 그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작은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는 늘 감동을 준다. 그래서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생(生)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한 여자의 우울함과 슬픔이 아니라, 상처 입은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민의 영화다. 영화는 속삭인다.
'괜찮아. 살아있으니까.'
삶을 위한 '아스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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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돈으로 껌을 나눠줘야 친구 소리를 듣는 자넷은 왕따 소녀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지만 이 작은 소녀의 특별한 재능은 특별한 외모 때문에 좌절된다. 웃을 때 보이는 썩은 이빨,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빨강 곱슬머리, 뚱뚱한 몸. 평범하지 않은 외모 때문에 어린 자넷은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점점 타인과의 소통에 서툰 어른으로 성장한다.
세상은 못생긴 여자애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꿈이란 게 현실에서는 가혹하기도 하다는 것을 배우면서, 1부 '섬을 향하여'에서 자넷은 언니의 죽음을 겪고 사범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릴 적 쓴 시를 불태우면서 첫 번째 시련을 겪는다.
영화 중간에 자넷이 죽은 언니한테 주는 꽃이 시들지 않게 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넣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에게 시(侍)는 삶의 '아스피린'이 되어준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외로운 삶이 더 이상 시들지 않게 해주는 자넷만의 약.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을 위한 '아스피린'을 갖고 있는가.
글, 외로움, 세상 그리고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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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가족을 떠나 외삼촌 집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또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자넷은 결코 글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글은 사람과 세상을 향한 소통도구이다. 그녀가 글 쓰는 일을 통해 현실을 볼 때, 세상을 보는 막연하나마 온기 있는 '시점'이 생긴다. 일상을 깨고 그녀가 수동적인 삶을 떨칠 때, 모든 것이 기적처럼 재빨리 바뀌지는 않는다. 자기 현실에 맞는 소박한 한 걸음, 갖춰진 것 없는 인생은 더디지만 꿈은 오래 덥혀진다.
글은 최소한의 온기를 나누는 소통방법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글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을 비춰 세상을 이해한다. 자신이 단지 '못생긴 여자애'일 뿐이거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가짜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던 자넷은 점차 실상 그 모든 모습들을 다 진짜 자신의 모습임을 받아들여 갈 수 있게 된다. 세상과 관계에 불안정하지만 내면에 묘한 기운을 지닌 그녀가 글을 통해 소통을 하면서 외로움과 성장의 고통을 감내해간다. 이 영화에서 고독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선험적 조건처럼 드러나지만 이 고독을 감내할 수 있는 한 여자의 글, 그리고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점차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도, 세상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글 속 세계에 수동적으로 박혀 있던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보겠다고 능동적으로 삶을 전환하는 모습이야 말로 영화 속 자넷이 꾸는 가장 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나날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 가는 삶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대개 불가능한 것은 이 나이 때의 우리들에게 거는 사회와 가족의 기대가 큰 탓이기 때문일까. 감독은 그녀에게 글 써서 출세할 수 있는 방법 따위를 쥐어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정신병원에서 탈출해 당당하게 살 수 있는지를 덜컥 알려주지도 않았다. 자넷의 미래는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어른이 되는 것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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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선택하고 결정하고 있는가.
삶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닐 수도 있다. 세상 잣대에 따라 우리의 삶을 먼저 계산하고 미리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내가 꿀 수 있는 꿈의 가능성을 나 스스로 줄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못생긴 것을 장애로 여기는 곳, 그래서 예뻐지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몸을 혹사시켜도 되는 거라고 말하는 세상,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모두가 똑같이 토익 책을 펼쳐들고 학점에 목숨 거는 것이 당연한 게 되어 버린 세상 그래서 남들이 시선이 내 시선보다 중요한 세상.
어쩌면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내 삶을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의 시선에 갇혀 내 삶을 살지 못하고, 그저 연기하고 있을 뿐일지도.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붙잡고 가두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넷이 그녀를 향한 세상의 잣대를 떨쳐버리고 진짜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면서 점차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처럼.
자넷이 언덕에서 맞지 않는 신발을 벗고 뛰는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성장이란, 혹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현실에 발을 내딛는 것이니까. 그리고 맞지 않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비록 그것이 맨발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뛸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다.
https://m.blog.naver.com/alinbrian/150054115176
내 책상 위의 천사 (an angel at my table)
2009. 7. 13. 22:34
*짧은 감상평
[dvd vs dvd] 상처입은 사람에게 바치는 제인 캠피온의 입맞춤 씨네21 2005-12-30 10:00:00
뉴질랜드에서 날아온 리얼리즘 버젼 '미스 홍당무'
신데렐라부터 콩쥐와 팥쥐의 팥쥐, 그리고 쥘 르나르의 소설 '홍당무'에 이르기까지 어릴 적 부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천덕꾸러기이자 구박덩이인 주인공들은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구석이 하나쯤은 있었고 그들을 감싸고 도와주는 존재가 늘 나타나 주었다. 허나 이 영화의 주인공 자넷에게 사랑스런운 면은 커녕 빨간 곱슬머리와 썩은 치아,(나중에 그 치아마저 다 뽑힌다.)그리고 대인공포증에 기이한 행동까지 지녀 아무도 그녀를 구원하러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문학과 글쓰기 만이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다.
현실이라 믿기엔 너무나 잔혹한 대우를 받은 자넷! 그녀의 실제 이야기가 영화 '피아노'와 '여인의 초상'으로 유명한 여성감독 제인 캠피온에 영상으로 옮겨졌다. 피아노에서 흘렀던 그 숨막힐듯한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 여인의 초상에서 보였던 가슴 밑바닥을 울리는 절망의 소리가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보여진다.
진득하니 흘러가는 시간속에 진실은 드러나고 절망의 상처는 희망이라는 새살이 돋는다.
그녀의 책상위의 천사는 결국 세상을 향한 글쓰기, 즉 자기고백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안아주는 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과거를 고스란히 뒤돌아봄으로써 담담히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게 된것이 아닐가 싶다. 음...가슴이 무거워지는 그래서 한숨조차 쉽게 내쉬지 못하게 되는 영화이다.
(글) ibuti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재닛 프레임의 자서전 3부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출렁대다 서서히 분절되어 사라지면 우리는 한 여자의 영혼이 먼지가 되어 날갯짓하는 걸 본다. 1부 <이즈랜드로>. 훔친 돈으로 껌을 나눠줘야 친구 소리를 듣는 프레임은 왕따 소녀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프레임은 사범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릴 적 쓴 시를 불태운다. 2부 <내 책상 위의 천사>. 타인과 외부세계로부터 점점 소외되던 프레임은 정신병원에서의 8년 동안 정신분열증 치료라는 명분 아래 전기충격 요법을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 그녀의 글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그녀는 첫 소설이 출판되기 전 유럽으로 떠난다. 3부 <거울 도시로부터의 결구>. 스페인에서의 연애도 잠시, 다시 병원을 찾은 그녀는 과거 진단이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프레임은 가족들이 죽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타자기에선 풀, 바람, 전나무, 바다가 나지막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나씩 찍힌다. 새소리에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트위스트를 춘다. 그녀는 이제 자연과 함께 속삭인다.
1980년대의 제인 캠피온은 낯선 땅 뉴질랜드 출신 여성감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신기할 만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진짜 여자가 진짜 여자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는 데 있다. 그녀는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와 욕망과 슬픔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모든 이빨이 썩어가는 육체적 고통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적 혼란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캠피온이 계속해서 다루는 주제를 대표한다. 상처와 고통을 아는 자만이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재닛 프레임의 이야기는 거기에 한치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우울함으로 가득한 작품이 아니어서, 그녀를 위해 준비된 위안이며 정신의 그믐을 지나 새벽을 맞이한 자를 위한 찬가이자 상처입은 사람에게 바치는 애정어린 입맞춤이 된다.
초기에 나온 호주판 dvd의 화질은 1.33:1 스탠더드 화면비율에다 조악했으나, 영국·프랑스·미국판(감독이 인정한 판본)은 아나모픽 1.77:1 비율에 맞춰져 있다. 호주·영국·프랑스판은 dd 2.0 사운드를, 미국판은 dd 5.1 사운드를 담고 있으며, 자막은 미국판에만 지원된다. 미국판은 ntsc 판본으로서 재생시간을 제대로 살린 게 장점이며, 다른 판본에도 수록된 메이킹필름, 6개의 삭제 장면, 예고편 등의 부록 외에 음성해설과 원작자의 라디오 인터뷰를 수록해 눈길을 끈다. 단, 캠피온을 유명하게 만든 <필> <열정 없는 순간들> 등의 중·단편과 장편 데뷔작 <스위티>를 보고 싶다면 프랑스의 박스판이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