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내사랑.Hiroshima Mon Amour.1959.BW
1957년 8월,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30세 가량의 프랑스 연인이 영화 촬영 차 히로시마에 와 있었고, 영화는 여인이 프랑스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한 남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세계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 촬영이 거의 끝난 상태에서 여인은 30대의 일본 건축 기사를 만나 정사를 나눈다. 관객은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인지 또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모른다. 여인은 1944년 스무살이었을 때 한 독일 병사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삭발을 당한 채 정신 이상자로 몰리고, 독일 병사는 해방군에 의해 사살당한다. 그녀가 지하실에 갇힌 채 슬픔을 삭이고 있을 때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다. 건축가는 바로 그때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는다. 두 남녀는 히로시마에서 관계를 맺지만 여인은 독일 병사를 회상한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지만 극복할 수 없는 감정의 심연으로 그들의 관계는 공허해질 뿐이다.
알랭 레네의 영화는 '시간의 공간화'라고 특징지워진다. 알랭 레네는 당시 일기 시작한 누보 로망에 영향을 받자만, 문자로는 실현 불가능한 영화 사실적인 것의 추상을 사운드와 이미지의 플래쉬 백(flash back)으로 성취하고 있다.
1997년 국내 수입됐으나 내용과 스탭, 참여 배우들 가운데 일본인이 많고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당시 바로 상영되지 못하다가 2001년 4월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했다.
알랭 레네 감독의 사랑과 소멸, 동정심의 필요성에 대한 이 시적인 이 영화는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두 연인의 이야기를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라는 보다 큰 철학적 문제에 접목시킨다. 이 영화는 프랑스 여자와 일본 남자간의 관계를 그리면서 동시에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일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레네 감독은 섹스와 사랑, 추억, 회한,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평화로운 장면들과 원폭 투하 직후의 히로시마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찍은 장면들을 나란히 배치하면서 레네 감독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한 전후 세계에서 접촉과 뉘앙스, 제스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 시적인 이미지와 딱딱한 다큐멘터리 장면 등을 교묘히 융합하여 전례가 없는 연금술적인 영화제작 방식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로 레네 감독은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튀르포 등과 함께 누벨 바그 장르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비평가들과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받아냈다. (EBS 영화팀)
1959년 제작된 프랑스와 일본의 합작영화이다. 알랭 레네(Alain Resnais)가 감독하고 에마뉘엘 리바(Emmanuelle Riva)와 오카다 에이지가 주연을 맡았다. 원작자인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가 직접 각본을 쓴 이 작품은 일본 히로시마를 무대로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 사이의 덧없는 사랑을 그렸다.
1957년 8월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 촬영차 프랑스 여배우 엘르(에마뉘엘 리바)가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에 온다.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일본인 건축가 루이(오카다 에이지)를 만난다. 그녀는 그를 보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프랑스의 느베르에서 그녀가 사랑했던 독일군 병사를 생각한다. 병사는 그녀의 눈앞에서 사살되었고 그녀는 머리를 삭발당한 채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같은 시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건축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는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그들의 정사는 공허하게 끝난다.
1959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은 이 작품은 주인공의 회상에 따라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에릭 로메르가 "영화의 큐비스트이자 유성영화 이래 최초의 현대적인 감독"이라 예찬한 알랭 레네는 고전영화의 한계에 대해 고민한 감독이었다. 레네는 "고전영화는 현대 삶의 실제 리듬을 전달할 수 없다. 현대의 삶은 분절적이고 이러한 것을 모든 사람이 느끼고 있으며 문학만큼이나 회화는 그러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왜 영화는 그동안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에 매달려 있었던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그가 제기한 현대적인 삶의 감각과 의식의 흐름을 충격적인 이미지와 현대적인 몽타주로 예리하게 표현한 현대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였다. 장 뤽 고다르가 이 영화를 "참조 불가능한 영화"라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충격은 영화 서두에 제시되는 끔찍한 이미지들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무표정한 병실의 환자들, 히로시마 박물관의 비비 꼬인 쇠뭉치, 시뻘겋게 달구어진 쇳조각, 토막토막 잘려진 쇳덩이, 몽땅 빠져버린 여인들의 머리 다발, 잿더미에서 기어나오는 여인, 원폭 투하 후 땅에서 기어나오는 개미, 지렁이, 구더기들, 세 발로 절룩거리는 강아지, 화상을 입은 여자, 두 손이 뒤틀리고 장님이 되어 악기를 연주하는 일본 여인, 버려지는 음식들, 거리를 가득 메운 분노한 시민들. 원자폭탄은 세계의 구멍, 인간의 구멍, 감각의 구멍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또한 거대한 세계를 파열시켰고, 인간의 시간과 기억의 세계를 잘게 쪼개버렸다. 일본을 방문한 프랑스 여인은 일본인 남자에게 '당신은 단 한 번에 내 몸에 꼭 들어맞는 조각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조각은 퍼즐을 맞추기 전에 이미 구성되어 있었던 부분이 아니라 마치 비수처럼 빈틈을 쪼개고 들어오는 탈구된 이미지들이다.
생생한 기억의 아픔을 담고 있는 이미지는 과거의 어느 시간대에 견고하게 굳어버린 화석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편적인 기억들은 끊임없이 메마른 강을 따라 흐르고 어느 순간 역류한다. 루아르와 오오다라는 서로 다른 강을 따라 흐르던 시간과 기억은 원류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히로시마와 느베르는 기묘하게 하나가 된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세계 기억, 세계의 나이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유일한 레퍼런스가 에이젠슈테인이라는 자크 리베트의 주장은 역설적이지만 타당해 보인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세계를 붕괴시켰고, 조각나버린 세계 때문에 그녀는 전체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히로시마와 느베르, 독일군 병사와 일본인 남자, 그와 그녀, 다시 말해 두 세계, 두 지역, 두 인물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제각각의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인 상처를 지니고 자신만의 시간 속에 매몰되어 있지만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이웃하고 겹친다. 시간과 공간은 구겨진 시간, 구겨진 공간으로 변모한다.
느베르는 그녀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never) 시간 속에 매몰된 장소이며, 그녀가 사랑했던 독일군 병사는 불완전한 현존, 불완전한 죽음, 망각도 부활도 아닌 기억의 탈진을 초래한다. 시간과 기억의 지층을 탐사하는 타임머신으로서의 영화. 이 영화보다 기억의 고통을 더 가슴 아프게 다룬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50년 전 사랑얘기다. “영화는 실험”이라던 감독 알랭 레네와 누보로망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히로시마와 그곳에서의 짧은 사랑, 역사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그 결과 레네는 기억과 망각,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러브스토리를 자신의 처녀작으로 내놓았다.
종전 후 10년, 히로시마의 카페들은 네온으로 눈부시고 원폭의 공포는 안전하게 박제돼 있다. 그곳에서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는 짧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벗은 몸으로 남자를 끌어안고 “이런 도시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당신은 내 반쪽”이라 읊조리는 여자의 열정적인 목소리 위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원폭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흑백으로 깔린다. 히로시마가 몸으로 새긴 전쟁의 상처를 가졌듯 이들에게도 불행한 기억이 있다. 여주인공은 느베르에서 한 독일군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처형당한다. 분노 속에서 죽어간 사랑과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은 그녀는 일본인 연인 앞에서 “히로시마에서 모든 것을 봤다”고 되뇌인다. 그러나 그는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며 되받는다. 결국 과거와 현재로 의식이 오가던 여자는 남자 곁에 머물지 못한다.
같은 해 59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400번의 구타>를, 다음 해에 장 뤽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발표하면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누벨바그는 과거 기승전결의 이야기 논리를 깨는 영화어법의 발견이었다. 알랭 레네도 전통적인 회상 방식 대신 일본 히로시마와 프랑스 느베르, 10년 전과 현재에 걸쳐 있는 인물의 의식을 자유자재로 따른다. 두 남녀에게 과거는 기억으로 남아 끊임없이 현재의 삶을 간섭하고 이들의 사랑은 자유로울 수 없다. 지울 수 없는 과거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마술과도 같은 사랑을 택하지만 그들은 불행한 상흔을 히로시마에서 다시 확인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개봉 당시 영화언어의 혁명을 활기차게 알렸지만 "당신은 히로시마... 나는 느베르..."라 되뇌는 두 남녀의 대화는 쓸쓸한 여운에 차 있다.
누벨바그 감독과 누보로망 작가가 합심하여 감독은 자신의 반전 이미지를, 작가는 그녀의 화법을 전달.
"주인공의 회상에 따라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당신은 히로시마"
"당신은 누베르"
상처를 극복하려면 과거를 인정해야한다.
이제 우린 차분하게
지난 날을 애도하게 될거예요.
애도하는 일 외엔
달리 할 일도 없겠죠.
오직 시간만이 흘러가고
그리고 망각의 시간이 오겠죠.
우릴 하나이게 한 것의 이름도
차츰 기억에서 지워지다가
결국 영원히 사라지겠죠.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지
여자
알다시피 광기는 지혜와 마찬가지죠.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어요.
지혜와 너무나도 흡사하게 광기는 당신에게 발동하여 당신을 채우지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나 당신이 광기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되지요.
남자
당신은 악의에 차 있었나요?
여자
그것이 바로 나의 광기예요. 나는 악의에 차 있엇지요.
진짜 어떤 행동이든 악의로 해 낼 수 잇을 것 같았지요.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나에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당신, 이해하겠어요?
남자
그럼요.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1959)_ 알랭 레네
https://blog.naver.com/namu8821/60053297742
히로시마내사랑.Hiroshima Mon Amour.1959.720p.BW
https://youtu.be/CLts830aLlw
알랭 레네의 영화는 '시간의 공간화'라고 특징지워진다. 알랭 레네는 당시 일기 시작한 누보 로망에 영향을 받자만, 문자로는 실현 불가능한 영화 사실적인 것의 추상을 사운드와 이미지의 플래쉬 백(flash back)으로 성취하고 있다.
1997년 국내 수입됐으나 내용과 스탭, 참여 배우들 가운데 일본인이 많고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당시 바로 상영되지 못하다가 2001년 4월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했다.
알랭 레네 감독의 사랑과 소멸, 동정심의 필요성에 대한 이 시적인 이 영화는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두 연인의 이야기를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라는 보다 큰 철학적 문제에 접목시킨다. 이 영화는 프랑스 여자와 일본 남자간의 관계를 그리면서 동시에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일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레네 감독은 섹스와 사랑, 추억, 회한,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평화로운 장면들과 원폭 투하 직후의 히로시마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찍은 장면들을 나란히 배치하면서 레네 감독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한 전후 세계에서 접촉과 뉘앙스, 제스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 시적인 이미지와 딱딱한 다큐멘터리 장면 등을 교묘히 융합하여 전례가 없는 연금술적인 영화제작 방식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로 레네 감독은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튀르포 등과 함께 누벨 바그 장르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비평가들과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받아냈다. (EBS 영화팀)
1959년 제작된 프랑스와 일본의 합작영화이다. 알랭 레네(Alain Resnais)가 감독하고 에마뉘엘 리바(Emmanuelle Riva)와 오카다 에이지가 주연을 맡았다. 원작자인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가 직접 각본을 쓴 이 작품은 일본 히로시마를 무대로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 사이의 덧없는 사랑을 그렸다.
1957년 8월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 촬영차 프랑스 여배우 엘르(에마뉘엘 리바)가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에 온다.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일본인 건축가 루이(오카다 에이지)를 만난다. 그녀는 그를 보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프랑스의 느베르에서 그녀가 사랑했던 독일군 병사를 생각한다. 병사는 그녀의 눈앞에서 사살되었고 그녀는 머리를 삭발당한 채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같은 시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건축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는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그들의 정사는 공허하게 끝난다.
1959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은 이 작품은 주인공의 회상에 따라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에릭 로메르가 "영화의 큐비스트이자 유성영화 이래 최초의 현대적인 감독"이라 예찬한 알랭 레네는 고전영화의 한계에 대해 고민한 감독이었다. 레네는 "고전영화는 현대 삶의 실제 리듬을 전달할 수 없다. 현대의 삶은 분절적이고 이러한 것을 모든 사람이 느끼고 있으며 문학만큼이나 회화는 그러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왜 영화는 그동안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에 매달려 있었던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그가 제기한 현대적인 삶의 감각과 의식의 흐름을 충격적인 이미지와 현대적인 몽타주로 예리하게 표현한 현대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였다. 장 뤽 고다르가 이 영화를 "참조 불가능한 영화"라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충격은 영화 서두에 제시되는 끔찍한 이미지들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무표정한 병실의 환자들, 히로시마 박물관의 비비 꼬인 쇠뭉치, 시뻘겋게 달구어진 쇳조각, 토막토막 잘려진 쇳덩이, 몽땅 빠져버린 여인들의 머리 다발, 잿더미에서 기어나오는 여인, 원폭 투하 후 땅에서 기어나오는 개미, 지렁이, 구더기들, 세 발로 절룩거리는 강아지, 화상을 입은 여자, 두 손이 뒤틀리고 장님이 되어 악기를 연주하는 일본 여인, 버려지는 음식들, 거리를 가득 메운 분노한 시민들. 원자폭탄은 세계의 구멍, 인간의 구멍, 감각의 구멍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또한 거대한 세계를 파열시켰고, 인간의 시간과 기억의 세계를 잘게 쪼개버렸다. 일본을 방문한 프랑스 여인은 일본인 남자에게 '당신은 단 한 번에 내 몸에 꼭 들어맞는 조각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조각은 퍼즐을 맞추기 전에 이미 구성되어 있었던 부분이 아니라 마치 비수처럼 빈틈을 쪼개고 들어오는 탈구된 이미지들이다.
생생한 기억의 아픔을 담고 있는 이미지는 과거의 어느 시간대에 견고하게 굳어버린 화석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편적인 기억들은 끊임없이 메마른 강을 따라 흐르고 어느 순간 역류한다. 루아르와 오오다라는 서로 다른 강을 따라 흐르던 시간과 기억은 원류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히로시마와 느베르는 기묘하게 하나가 된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세계 기억, 세계의 나이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유일한 레퍼런스가 에이젠슈테인이라는 자크 리베트의 주장은 역설적이지만 타당해 보인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세계를 붕괴시켰고, 조각나버린 세계 때문에 그녀는 전체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히로시마와 느베르, 독일군 병사와 일본인 남자, 그와 그녀, 다시 말해 두 세계, 두 지역, 두 인물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제각각의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인 상처를 지니고 자신만의 시간 속에 매몰되어 있지만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이웃하고 겹친다. 시간과 공간은 구겨진 시간, 구겨진 공간으로 변모한다.
느베르는 그녀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never) 시간 속에 매몰된 장소이며, 그녀가 사랑했던 독일군 병사는 불완전한 현존, 불완전한 죽음, 망각도 부활도 아닌 기억의 탈진을 초래한다. 시간과 기억의 지층을 탐사하는 타임머신으로서의 영화. 이 영화보다 기억의 고통을 더 가슴 아프게 다룬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50년 전 사랑얘기다. “영화는 실험”이라던 감독 알랭 레네와 누보로망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히로시마와 그곳에서의 짧은 사랑, 역사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그 결과 레네는 기억과 망각,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러브스토리를 자신의 처녀작으로 내놓았다.
종전 후 10년, 히로시마의 카페들은 네온으로 눈부시고 원폭의 공포는 안전하게 박제돼 있다. 그곳에서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는 짧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벗은 몸으로 남자를 끌어안고 “이런 도시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당신은 내 반쪽”이라 읊조리는 여자의 열정적인 목소리 위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원폭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흑백으로 깔린다. 히로시마가 몸으로 새긴 전쟁의 상처를 가졌듯 이들에게도 불행한 기억이 있다. 여주인공은 느베르에서 한 독일군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처형당한다. 분노 속에서 죽어간 사랑과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은 그녀는 일본인 연인 앞에서 “히로시마에서 모든 것을 봤다”고 되뇌인다. 그러나 그는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며 되받는다. 결국 과거와 현재로 의식이 오가던 여자는 남자 곁에 머물지 못한다.
같은 해 59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400번의 구타>를, 다음 해에 장 뤽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발표하면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누벨바그는 과거 기승전결의 이야기 논리를 깨는 영화어법의 발견이었다. 알랭 레네도 전통적인 회상 방식 대신 일본 히로시마와 프랑스 느베르, 10년 전과 현재에 걸쳐 있는 인물의 의식을 자유자재로 따른다. 두 남녀에게 과거는 기억으로 남아 끊임없이 현재의 삶을 간섭하고 이들의 사랑은 자유로울 수 없다. 지울 수 없는 과거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마술과도 같은 사랑을 택하지만 그들은 불행한 상흔을 히로시마에서 다시 확인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개봉 당시 영화언어의 혁명을 활기차게 알렸지만 "당신은 히로시마... 나는 느베르..."라 되뇌는 두 남녀의 대화는 쓸쓸한 여운에 차 있다.
누벨바그 감독과 누보로망 작가가 합심하여 감독은 자신의 반전 이미지를, 작가는 그녀의 화법을 전달.
"주인공의 회상에 따라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당신은 히로시마"
"당신은 누베르"
상처를 극복하려면 과거를 인정해야한다.
이제 우린 차분하게
지난 날을 애도하게 될거예요.
애도하는 일 외엔
달리 할 일도 없겠죠.
오직 시간만이 흘러가고
그리고 망각의 시간이 오겠죠.
우릴 하나이게 한 것의 이름도
차츰 기억에서 지워지다가
결국 영원히 사라지겠죠.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지
여자
알다시피 광기는 지혜와 마찬가지죠.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어요.
지혜와 너무나도 흡사하게 광기는 당신에게 발동하여 당신을 채우지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나 당신이 광기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되지요.
남자
당신은 악의에 차 있었나요?
여자
그것이 바로 나의 광기예요. 나는 악의에 차 있엇지요.
진짜 어떤 행동이든 악의로 해 낼 수 잇을 것 같았지요.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나에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당신, 이해하겠어요?
남자
그럼요.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1959)_ 알랭 레네
https://blog.naver.com/namu8821/60053297742
히로시마내사랑.Hiroshima Mon Amour.1959.720p.BW
https://youtu.be/CLts830aLl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