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201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진실은 포장이 번지르르한 선물상자같은 것이다. 유혹적인 모습에 허겁지겁 열어보지만 결국 리본을 한 번 당기고 나면 그만인 선물상자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고 내래이터고 할 것 없이 유난스럽게 찾으려 했던 진실은 열어보고 나면 실은 '별 것'이 아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스터리 장르의 탈을 쓰고 진실을 알고 싶어 약이 오른 관객과의 익살스러운 유희를 즐긴다.

영화는 작가인 A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묵게 되면서 호텔의 주인인 무스타파 제로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느 액자식 소설이 그렇듯 제로는 이 호텔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이야기에서 그는 '위대한' 호텔 관리인 뮤슈 구스타브의, 말하자면 어리숙한 수행원같은 존재이다.  그 이야기는 마담.D의 의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상속 담당 변호사는 그녀가 노년의 애인이었던 무슈 구스타브에게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걸작을 증여했다고 발표했고 잔혹한 아들 드미트리는 유언의 내용을 부정한다. 그 위대한 작품이 누구의 손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 비밀을 둘러싸고 추격전, 보다 정확하게는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관찰의 스토리텔링: 인간에 대한 치열한 관심

"inspired by the writings of Stefan Zweig"

엔딩 크레딧의 서두에서 웨스 앤더슨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영감을 얻어…"라는 짧은 문구를 택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체스 이야기(Schachnovelle>가 떠올랐다. 영화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이 책과 닮은 점이 많다. 관찰에서 시작해 관찰로 끝나며, 대부분의 내용이 관찰대상의 회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와 웨스 앤더슨의 "관찰"은 관음증과는 확연히 다른, 인간에 대한 치열한 관심의 표현이다. 나는 그 관찰 방식에 냉소적 태도보다는 인간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웨스 앤더슨의 카메라는 인물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고정된 프레임 속에서 인물들은 수평으로 또는 수직으로 이동하면서 2차원의 구도를 연출하고, 우리는 캔버스를 구경하듯 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카메라의 무관심한 태도가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인물들의 희노애락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스운 말과 행동인데도 아무도 웃지 않고 화를 낼 일임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들을 관찰한다. 귀여울 정도로 빤히 보이는 허영심, 욕심, 집착과 고집….

한펀 <체스 이야기>의 '나'는 체스 대회와 두 빼어난 인물들에 대해 집착적인 호기심을 보이는데, 그는 "어떤 종류든 편집광적으로 단 한 가지 생각에 갇힌 인간들 모두에 대해 나는 평생 호기심을 느껴왔다"고 고백한다. '나'는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와 그에 도전하는 B박사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며, 관찰을 넘어서서 행동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하여 게임 안에 뛰어드는 적극적 관찰자이다. 그는 시종일관 경외의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지만 실은 이 거대한 게임을 조종하는 관찰자인 것이다. 선상 체스게임을 주도해 B박사라는 기이한 인물의 심리를 밖으로 끌어낸 것이 결국 소설 속 화자인 '나'이듯,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소설을 재구성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꽃을 헌정받는 사람도 가장 바깥쪽 액자의 '작가'이다.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나칠 정도의 호기심과 관심은 인간 행동에 대한 섬세한 스케치로 이어진다.


숨겨진 진실

진실은 숨겨져 있다. 진실을 덮고 있는 수많은 군더더기들과 화려한 장식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진실에 가까워지려 하지만 불필요한 반목과 지리한 싸움들이 너무나 많다. 전설적인 체스 챔피언을 단숨에 꺾어버린 놀라운 B박사의 재능에 대한 예찬은 점차 수면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사회적인 이야기로 전환되며 그의 파괴적인 트라우마에 주목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점령한 나치군의 깃발과 세월이 흘러 생기를 잃어버린 남루한 호텔의 모습이 어딘가 씁쓸한 느낌을 주듯이, 대단히 세속적이며 허영심으로 가득한 뮤슈 구스타브의 뒤에도 가려진 것들이 있었다.

그런 진실들과는 관계 없이 작품 속에서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눈과 귀를 현혹한다. 눈부신 부다페스트 호텔과 머릿속으로 체스판을 그리는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남자… 액자 속 이야기는 스토리텔러의 자세에 의해서 무한하게 각색된다. 따라서 그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말해지는 것 그대로를 본다. 무스타파 제로가 추억하는 뮤슈 구스타브와, 그런 제로를 경외하듯 쳐다보는 젊은 작가는ㅡ그는 제로의 얼굴에서 총명하고 고상한 기운을 읽었다고 말한다ㅡ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액자식 구성은 이 모든 비현실적인 스토리텔링에 면죄부를 준다. 환상적인 공간과 인물, 그리고 불가사의한 줄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제로가 구스타브를 회상할수록, 작가가 무스타파 제로를 회상할수록, 늙은 작가가 젊은 시절을 회상할수록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빛이 바래기는 커녕 점점 화려하고 생기넘치게 변한다. 하지만 늙은 작가는 영화 첫머리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작가가 캐릭터나 에피소드를 머릿속에서 창조해 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다"라고 항변한다. 그 와중에 장난감 총을 쏴 대는 손자가 작가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건 헛소리야"라며 맥을 끊는 듯하게 느껴졌다. 늙은 작가의 자기방어였을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마담.D의 유언 속 단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한 쫓고 쫓기는 싸움은 “누가 누굴 쏘고 있는 겁니까?(who’s shooting who?)”라는 대령의 말로 폭발한다. 글쎄…… 실은 모든 재산이 뮤슈 구스타브에게 상속되었다고 하는 허무한 진실은 탈옥, 살인, 스키를 탄 채로 벌이는 추격전처럼 비현실적인 상상과 유머로 매혹적이게 포장되어 있다. 아름다운 포장을 보면서 감탄하든, 내용물을 보고 실망을 하든, 또다른 진실을 찾아 헤매든지간에 영화를 통해 누구든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14년 8월 3일
[감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과 체스 이야기(SCHACHNOVELLE, STEFAN ZWIEG)
http://dinoendri.com/wp/?p=2324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2014.1080p

영화 뒷이야기 : https://youtu.be/RAMst3qdrZ8
예고편 : https://youtu.be/bBrTTSlCzNk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2014 Photo-Image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2014 Photo-Image

https://heisme.skymoon.info/article/SuggInfo/370  

홀로 앉은 돌계단은 사람들 말 소리에 그리 삭아 내리고 시간은 죽어 나도 길게 누운 곳 [하늘-돌계단 위에서]
Hot
   5,707

Hot 알라딘.Aladdin.2019 :영화

[영화] 하늘 0 5,707
Hot
   6,111

Hot 파티.The Party.1968 :영화

[영화] 하늘 0 6,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