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울 1884년 서울 모습 사진과 해설ㅣ퍼시벌 로웰의 사진ㅣSeoul 1884, taken by Percival Lowell
조선시대 서울 1884년 서울 모습 사진과 해설ㅣ퍼시벌 로웰의 사진ㅣSeoul 1884, taken by Percival Lowell
대한여지도 Korean Geographic
이전에 올렸던 영상을 다시 편집하고 해설을 붙인 것입니다.
이전 영상 시청하고 또 댓글 달아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조선 말기 서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입니다.
퍼시벌 로웰은 미국을 방문하는 조선의 보빙사 일행을 수행한 공로로 고종의 초청을 받아 조선을 방문하게 됩니다.
로웰은 1883년 12월 20일 조선에 도착해 3개월간 머물렀는데, 그때 로웰이 촬영한 서울의 모습입니다.
로웰은 이 여행에서 보고들은 것을 자세히 기록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사진출처 Museum of Fine Arts, Boston (https://www.mfa.org)
천문학자로서 퍼시벌 로웰의 업적 및 조선을 방문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기
https://ko.wikipedia.org/wiki/%ED%8D%BC%EC%8B%9C%EB%B2%8C_%EB%A1%9C%EC%9B%B0
영상 속 사진들은 워낙 오래전에 찍은 것이라 그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확인하기 힘든 곳들이 있는데,
장소 확인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연구자료가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외국어대학교 정영진님의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재 로웰의 조선사진 설명문의 오류와 정정방안"
이전 영상에 정영진님이 댓글 달아주셨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공유합니다.
[영희전을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곳’이라고 한 데 대해] 용어의 정의에 주의해야겠죠? '역대'란 용어는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말씀대로 '일부' 다른 왕들의 어진도 보안되어 있었으니 '역대'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옳은 말도 아닙니다. 어진을 봉안한 전각들과 관련된 역사는 꽤 복잡하여 간단히 설명하기가 불가합니다.
저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하자면 영희전은 '태조'의 어진을 모신 건물이기에 중요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태조'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태조의 어진을 모신 '전'으로 설명문을 붙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저 사진에 함축된 역사적 이야기 이기도 하구요.
로웰의 사진에서 중요한 점은 저 홍살문인데, 저 홍살문은 조선에서 가장 큰 홍살문으로 추정되는 것이고, 그래서 로웰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따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저 곳이 일본인거류지로 변하면서 영희전과 함께 사라진, 저렇게 큰 홍살문을 세운 이유는 바로 영희전이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종은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선왕이 있는(?) 종묘와 영희전을 찾아 영적 문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말 격동의 시기에는 특히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찾아뵈느라(?) 영희전으로 자주 행차하였습니다. 신주보다는 어진을 찾아뵙는 게 더욱 실감이 났겠죠.^ ^ 당대에 촬영된 다른 사진들을 살펴보면 이 영상에서도 보여주고 있는 저 수표교 위를 지나가는 왕의 행차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1장 찾아 볼 수 있을겁니다. 물론 그 행차가 위의 이유로 영희전을 향하는 행차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제가 로웰의 사진들을 연구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제대로 된 검증없이 역사자료를 마구 평가-정의하고 오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영희전을 가기 위해서 나선 왕의 행차가 지나가는 종로에 그 행차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에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만민공동회'의 모습이라는 설명을 붙인 책을 나랏돈 들여 출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시대에 촬영된 사진들을 조선의 모습을 얕잡아보는 시선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라고 평가해 왔습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당대 조선의 '후진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라고 찬동하기도 합니다(이 유툽물의 댓글 중에도 그런 류의 글들이 종종 보입니다, . 한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품위는 고층건물과 기계제품 등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시선으로 촬영된 사진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진들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치게 침잠된 생각에 바탕을 둔 평가입니다. 로웰의 사진들은 화각 안에 당대 조선의 매우 객관적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즉, 서구중심적이고 고전적 문화인류학적인(쉽게 말해서, 열등한 동양인의 모습을 담아 두려는) 시선이 아닌 객관적 정보를 담아두려는 의도를 가지고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그러하니 정확한 촬영정보를 밝혀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당대의 역사를 좀 더 있는 그대로 연구할 수 있는 겁니다.
https://youtu.be/mR0RWGxghz8
대한여지도 Korean Geographic
이전에 올렸던 영상을 다시 편집하고 해설을 붙인 것입니다.
이전 영상 시청하고 또 댓글 달아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조선 말기 서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입니다.
퍼시벌 로웰은 미국을 방문하는 조선의 보빙사 일행을 수행한 공로로 고종의 초청을 받아 조선을 방문하게 됩니다.
로웰은 1883년 12월 20일 조선에 도착해 3개월간 머물렀는데, 그때 로웰이 촬영한 서울의 모습입니다.
로웰은 이 여행에서 보고들은 것을 자세히 기록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사진출처 Museum of Fine Arts, Boston (https://www.mfa.org)
천문학자로서 퍼시벌 로웰의 업적 및 조선을 방문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기
https://ko.wikipedia.org/wiki/%ED%8D%BC%EC%8B%9C%EB%B2%8C_%EB%A1%9C%EC%9B%B0
영상 속 사진들은 워낙 오래전에 찍은 것이라 그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확인하기 힘든 곳들이 있는데,
장소 확인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연구자료가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외국어대학교 정영진님의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재 로웰의 조선사진 설명문의 오류와 정정방안"
이전 영상에 정영진님이 댓글 달아주셨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공유합니다.
[영희전을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곳’이라고 한 데 대해] 용어의 정의에 주의해야겠죠? '역대'란 용어는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말씀대로 '일부' 다른 왕들의 어진도 보안되어 있었으니 '역대'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옳은 말도 아닙니다. 어진을 봉안한 전각들과 관련된 역사는 꽤 복잡하여 간단히 설명하기가 불가합니다.
저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하자면 영희전은 '태조'의 어진을 모신 건물이기에 중요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태조'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태조의 어진을 모신 '전'으로 설명문을 붙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저 사진에 함축된 역사적 이야기 이기도 하구요.
로웰의 사진에서 중요한 점은 저 홍살문인데, 저 홍살문은 조선에서 가장 큰 홍살문으로 추정되는 것이고, 그래서 로웰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따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저 곳이 일본인거류지로 변하면서 영희전과 함께 사라진, 저렇게 큰 홍살문을 세운 이유는 바로 영희전이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종은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선왕이 있는(?) 종묘와 영희전을 찾아 영적 문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말 격동의 시기에는 특히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찾아뵈느라(?) 영희전으로 자주 행차하였습니다. 신주보다는 어진을 찾아뵙는 게 더욱 실감이 났겠죠.^ ^ 당대에 촬영된 다른 사진들을 살펴보면 이 영상에서도 보여주고 있는 저 수표교 위를 지나가는 왕의 행차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1장 찾아 볼 수 있을겁니다. 물론 그 행차가 위의 이유로 영희전을 향하는 행차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제가 로웰의 사진들을 연구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제대로 된 검증없이 역사자료를 마구 평가-정의하고 오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영희전을 가기 위해서 나선 왕의 행차가 지나가는 종로에 그 행차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에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만민공동회'의 모습이라는 설명을 붙인 책을 나랏돈 들여 출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시대에 촬영된 사진들을 조선의 모습을 얕잡아보는 시선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라고 평가해 왔습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당대 조선의 '후진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라고 찬동하기도 합니다(이 유툽물의 댓글 중에도 그런 류의 글들이 종종 보입니다, . 한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품위는 고층건물과 기계제품 등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시선으로 촬영된 사진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진들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치게 침잠된 생각에 바탕을 둔 평가입니다. 로웰의 사진들은 화각 안에 당대 조선의 매우 객관적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즉, 서구중심적이고 고전적 문화인류학적인(쉽게 말해서, 열등한 동양인의 모습을 담아 두려는) 시선이 아닌 객관적 정보를 담아두려는 의도를 가지고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그러하니 정확한 촬영정보를 밝혀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당대의 역사를 좀 더 있는 그대로 연구할 수 있는 겁니다.
https://youtu.be/mR0RWGxghz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