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Lee Tzsche)] 오늘 하루
[이상은(Lee Tzsche)] 오늘 하루
오늘 하루 생각하고 내일은 신의 손에 맡기리
조용히 아주 조용히 미끄러지는 새들의 무언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할 것인가.
알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
우리가 정말 이어져 있다면 언젠가 또다시 만나겠지
오늘 하루 생각하고 내일은 신의 손에 맡기리
향기가 되어 사는 법 마음 속의 먼지를 버리며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할 것인가.
알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
우리가 정말 이어져 있다면 왜 나는 빈 배에 홀로 있는지
잊어버리는 데 몇 년이 걸리고, 아무는 데 몇 달이 걸리고
사람은 참 연약하구나 기억이 가물거리네
술이나 한 잔 마시자고 달구경이나 나가자고
너와 함께 웃어보자고 밤바람이나 쐬어보자고
오늘 하루 생각하고 내일은 신의 손에 맡기리
조용히 아주 조용히 미끄러지는 달의 무언
가수 이상은 (Lee Tzsche)
[음악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고 싶어요]
사람들은 가수 이상은(31)을 아마 이렇게 기억하고 있을 게다.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이라고 노래하면서 큰 키를 주체 못해 겅중겅중 뛰던 선머슴아. 2001년 봄의 여명(黎明). 그녀가 우리 앞에 10집 앨범을 던져놓았다. 한 곡 한 곡 들으면 데뷔 시절 '담다디의 가수 이상은'이란 선입견은 수정돼야 한다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엔들리스 레이>를 타이틀곡으로 한 새 앨범은 지난 10년간 치열한 음악적 모색을 해온 이상은 음악의 정점에 있다. 원숙한 30대의 뮤지션이 펴낸 '성찰의 기록'이다. 노랫말엔 시적인 상상력이 가득하고, 멜로디엔 동양적인 선(禪)이 묻어난다.
작사와 작곡 등 뼈대는 이상은이 세웠다. 일본인 작곡가 하지무 다케다가 이끄는 '펭귄스'가 모든 편곡과 연주를 담당하여 완성도가 높다. 범아시아권을 겨냥하여 영어곡이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 하루 생각하고 내일은 신의 손에 맡기리"(<오늘 하루>), "사랑을 찾는 건 파랑새를 찾는 것과 꼭 같아"(<삶>).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노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 쓴다.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색채를 저변으로 서구적이고 기독교적인 것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노래들. 이제까지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대중음악과 판이하다. 노래들을 모두 듣고 나면 그녀의 음악에서 말로 표현 하기 힘든 '치유의 힘'이 느껴진다.
"음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싶었죠. 종교적인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삶은 늘 깨달음의 연속 아닌가요. 뭐랄까. 삶의 궤적을 하나둘 꿰맞추는 느낌, 그런 것들을 노래 속에 담았어요"
이상은은 국내 가요계에서 보기드문 여성 싱어송라이터. 그녀의 음악적 연대기를 되짚어보기 위해서는 10년 저편의 세월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
"스무 살 때 저는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방송 출연하고, 인터뷰하고, 온갖 행사에 끌려다니고. 어느날 내 안에 내가 없더라구요. 모두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저는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외쳤죠. 상은아 떠나야 해."
91년 미국 뉴욕으로 갔다. 그곳에서 프래트인스티튜트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저널리스트 강신자씨가 그녀를 일본으로 불렀다. 그곳엔 이상은을 인정해주는 소수의 팬이 있었다. 소극장 공연의 연속.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이 뭔지 알았다.
'이상은'(5집), '공무도하가'(6집), '외롭고 웃긴 가게' (7집)를 통해 그녀는 독자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펼쳐나가는 아티스트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일본에서 그녀는 화가와 작가, 패션디자이너 등 문화 예술인이 선호하는 특별한 뮤지션이었다.
이상은이란 이름보다 일본에서 쓰는 예명인 '리채'(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을 합친 이름)로 더 유명했다. 일본의 폴리그램, 버진 재팬, 현재의 도시바 EMI를 옮겨다니면서 그녀는 비교적 행복하게 음악생활을 했다. 더 이상 피노키오처럼 춤을 추지 않았고, 삶이 썩은 달걀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7월부터 그녀는 런던의 첼시 칼리지에서 회화를 다시 시작했다. 런던에서 비틀즈를 다시 듣고, 록 클럽에 다니면서 음악적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음악과 미술을 어떻게 하면 절묘하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라는 화두가 생겼다.
10년여 전. 선머슴아 같던 이상은에 열광하던 팬들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진지한 작업을 인정해주는 지인들을 얻었다. 어쩌면 이상은은 대중으로부터 잊혀졌기에 행복한 뮤지션이 됐는지도 모른다.